[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정보와 둔필승총(鈍筆勝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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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정보와 둔필승총(鈍筆勝聰)

  • 승인 2021-11-27 21:09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분야별로 명강사를 선정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어떻게 평가하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개성이 존중되는 분야는 평가가 다분히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공모요건이 강의 경력 5년 이상 현업 강사여야 한다. 심사기준에 가장 적합한 전문심사위원이 심사한다. 서류 심사, 강사인지도, 경력, 언론 보도 내역 등을 반영하여 평가한다고 한다. 선정의도와 달리 인기 조사가 될 수 있어,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다. 사람마다 평가 기준이 달라, 아무리 인기가 많아도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한다.

강의를 잘 한다는 것은 글쓰기, 공부 등과 마찬가지로 기억력이 바탕이다. 살아오면서 가장 좋은 강의로 기억되는 것은 안병욱(安秉煜, 1920 ~ 2013)교수의 강의다. 안 교수는 철학자요, 빼어난 수필가이기도 하다. 다른 글에서도 인용하였지만, 대전에서 하룻밤 머물 때 강의 잘하는 법을 여쭙고 견해를 들은 적이 있다. 1) 메모하는 습관, 2) 사색, 3) 해박한 지식과 새로운 정보 습득, 4) 일목요연한 논리 전개, 5) 청중에게 기억시키는 주제의 반복과 정리, 6) 청중의 신뢰를 사는 정확한 숫자의 활용, 7) 재미있는 예화와 감동적인 명언 활용, 8) 맑으면서 리듬 있는 목소리, 9) 시선을 끄는 몸짓 등 세세한 내용이 대단히 많다.

역시나 전하고 싶은 것은 오늘의 주제인 기록이다. 당시엔 독일 격언이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딘 연필이 뛰어난 기억보다 낫다." 무딘 연필이 천재의 총명함 보다 낫다는 말이다. 메모의 중요성, 메모의 힘을 첫 번째로 강조하였다. 본인 역시 수첩이 새까맣게 작은 글씨로 메모하고 있었다. 생전에 항상 당신의 키만큼 책을 쓰는 것이 소망이라 했다. 50여권의 저술을 남겼다.

전남 강진에서 18년간 유배생활 한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 ~ 1836, 실학자)은 유배기간 50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그 많은 책을 저술할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일까? 바로 기록이다. 항상 지필묵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늘 강조하였다고 한다. "머리를 믿지 말고 손을 믿으라."



오래전에는 사실관계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백과사전 및 도감을 활용했다.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컴퓨터 활용 능력이 글 잘 쓰기, 말 잘하기의 관건이 되었다. 일 년이면 수권씩 전문서적을 출간하는 사람도 있다. 많지 않은 나이에 수백여 권 책을 쓴 저술가도 있다. 그것도 책마다 엄청난 분량을 자랑한다. 창작이라기보다 편집이라 볼 수도 있다. 그를 얕잡아 보는 사람도 있으나, 그것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변명과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아날로그로 하나의 사물을 관찰할 때 수천, 수만 개의 내용을 보고 있다. 그를 바탕으로 재생산하는 것이다.

둔필승총(鈍筆勝聰) 역시 같은 말이다. 직역하자면 무딘 붓이 총명을 이긴다, 이다. 둔필의 기록이 총명한 기억보다 낫다는 말이다. 사람 머리는 기억의 한계가 있다, 그마저 아주 작고 곧잘 잃어버린다. 기억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꺼내 쓰기 좋다는 장점이 있다. 지금은 정보기기의 발달로 그마저 별 차이가 없다. 따라서 손가락 기억법이라고도 한다.

컴퓨터는 ROM(Read Only Memory)에 있는 기록이 임시기억장치인 RAM(Random Access Memory)으로 옮겨와야 중앙처리장치(CPU)를 작동시켜 어떤 일을 처리할 수 있다. OS(Operating System)가 없으면 깡통에 불과하다. 컴퓨터를 작동시키는 기본적인 프로그램은 ROM에 OS(Operating System)의 일부나 응용소프트웨어는 디스크와 같은 별도의 보조기억장치에 보관된다. 사용자는 그런 것을 알 필요도 없다. 구축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만 잘 하면 된다.

신문, 잡지 등과 같은 정기 간행물이나 기록물에서 필요한 부분을 오려 모아 두는 것을 스크랩이라 한다. 본래는 임시로 모아 두는 것을 의미하지만, 살아있는 동안 활용할 수 있는 기록물이 될 수 있다. 최상의 분류법으로 분류해서 저장해둔다. 필자도 수도 없이 자료를 모으고 저장해 두었다.

일부 SNS에서는 어떤 단어 앞에 해시(#)를 붙여 글의 주제나 성격을 표시한다. 같은 것끼리 모아서 볼 수 있게 해준다. 하나의 서류묶음(Holder) 안에 들어 갈 수 있는 문서의 숫자나, 문서 이름 등에 한계가 있다. 우리가 원하는 자료를 보관하는 데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이제는 그런 고민도 필요 없다.

필요한 정보를 쉽게 찾는 것, 정보검색 요령이 관건이다. 우리는 정보검색에 국내외 포털 및 검색사이트(네이버, 다음, 네이트, 구글, 야후 등)나 해당 분야별 전문 사이트를 이용한다. 야후는 우리나라에서 철수한지 오래되었으나 해외에서는 여전히 운용된다. 외국 사이트의 경우 찾고자 하는 키워드를 해당 외국어로 변환, 검색 후 내용을 다시 한글로 전환하면 된다. 우리말이 아직 미공개 된 부분이 있어 번역기가 완벽하게 작동하지는 않으나 의미는 알 수 있다. 갈수록 더욱 친근한 번역이 이루어질 것이다.

정보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개인이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정보가 공유된다. 이제 메모나 축적은 필요가 없다. ROM에 기록되는 내용에 해당하는, 생각 작동 방식만 잘 갈고 닦으며 활용하면 된다. 누구나 정보강자가 될 수 있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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