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상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UST 교수 |
식물은 종자가 발아해 싹이 나고 일정 기간 영양생장을 한 후 꽃이 피는 생식생장으로 바뀐다. 꽃이 피는 개화현상은 생체 내에서 매우 정교하게 생리·생화학적으로 조절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온대지역에서 꽃 피는 현상에는 밤낮의 길이가 중요하다. 낮의 길이(일장)가 상대적으로 길어지면서 꽃이 피는 식물은 장일식물로, 짧아지면서 꽃 피는 식물을 단일식물로 구분할 수 있다. 밤낮의 길이에 관계없이 꽃을 피우는 중일식물도 있다. 봄에 피는 개나리, 보리 등은 장일식물에 속하고 가을에 피는 국화, 코스모스 등은 단일식물에 속한다. 건강식품으로 인기가 많은 고구마는 북위 27도 이상에서 꽃이 거의 피지 않는다. 일부 고구마 품종에서 꽃이 피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나빠진 환경스트레스로 인해 꽃이 핀다고 생각된다. 대나무는 60년이 되면 일생에 한 번 꽃이 피고 죽기도 한다. 꽃이 극심한 온도 변화, 공해물질(미세먼지 등), 영양 결핍 등 열악한 환경에서 식물은 일장 등 개화조건에 관계없이 꽃이 피기도 한다.
봄에 피는 꽃들은 꽃이 지고 나면 다음 해에 필 꽃눈(봉오리)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꽃눈은 일차적으로 초겨울에 일정 기간 추위를 겪고 난 후 오도가 따뜻해지면 꽃이 피게 된다. 봄에 꽃 피는 식물은 저온(추위) 처리한 후 따뜻한 온실에 일주일 정도 두면 활짝 만개한다. 종자나 식물체에 저온처리를 거쳐야만 꽃이 피는 것을 춘화현상이라 한다. 인위적으로 시설재배에서 춘화현상을 이용하면 봄꽃을 일찍 피울 수 있다. 개화현상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면 꽃 수요가 많은 졸업과 입학 시즌, 어버이날 등에 원하는 꽃을 공급할 수 있다. 시설재배에서 전구로 빛을 쪼여 일장을 길게 하거나 빛을 중단해 밤을 길게 하면 원하는 시기에 꽃을 출하할 수 있다.
식물에는 아주 적은 양으로 특이한 생리현상을 조절하는 식물호르몬이 10여종 밝혀져 있다. 지베렐린(GA)은 식물 키를 크게 하거나 발아를 촉진하는 데 관여하는 생장촉진 식물호르몬이다. 지베렐린은 일부 장일식물에 처리하면 눈꽃 형성을 촉진하기도 한다. 종자발아를 억제하거나 건조에 내성을 갖게 하는 앱시스산(ABA)이나 과일의 성숙을 촉진하는 에틸렌(가스)은 생장억제 호르몬으로 불린다. 꽃을 피우는 플로리겐으로 이름 붙여진 개화호르몬을 찾는 연구가 오래전부터 많이 됐으나 아직 모든 식물에 적용되는 물질은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 개화를 조절하는 현상이 유전자 수준에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어 머지않아 식물 색명공학기술로 꽃을 자유자재로 피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꽃을 원하는 시기에 자유롭게 피울 수 있다면 화훼산업뿐 아니라 식물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주류회사 산토리는 호주 벤처기업 플로리진과 협력해 유전자변형(GM) 파란(연보라) 장미를 개발해 시판한 바 있다. 파란장미는 오래전부터 개발이 시도됐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영어사전에 파란장미(blue rose)는 불가능(impossible)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명공학기술은 파란장미처럼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는 미래 혁신기술로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기후재앙, 식량과 영양 문제, 질병 팬데믹 등에 해결사로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곽상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U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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