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97강 조령모개(朝令暮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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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97강 조령모개(朝令暮改)

장상현/ 인문학 교수

  • 승인 2021-11-23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제97강: 朝令暮改(조령모개) : 아침에 영(令)을 내리고서 저녁에 바꾼다.

글자 : 朝(아침 조) 令(령 령/명령 령) 暮(저물 모) 改(고칠 개)로 구성되었다.

출전 : 한서(漢書) [식화지(食貨志)]에 조조(?錯)의 상소문 논귀속소(論貴粟疏)에 있다.

비유 : 법령의 개정이 너무 빈번하고 정책의 일관성이 없음을 비유함.



한(漢)나라 때 흉노(匈奴)가 자주 변방을 침략하여 약탈을 자행하자, 변방에서 수확하는 곡식만으로는 변방 지역 사람들의 식량을 충당하기에 부족하게 되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곡식을 헌납 받는 사람과 곡식을 변방까지 수송할 사람들을 모집하여 벼슬을 내리는 정책을 쓰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많은 상소문들이 빗발치듯 올라 왔다.

그 중 조조(?錯)라는 관리의 상소문(上疏文)에 보면 "지금 다섯 명의 식구가 있는 농가에서 노역(勞役)을 하는 사람이 두 사람 이상이면 안 됩니다. 그들이 경작하는 땅은 백 묘(百畝/약 5200평, 보기참조)를 넘지 않는데, 백 묘의 수확은 백 석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봄에 경작하고, 여름철에 풀 뽑고, 가을에 수확하여, 겨울에 저장하는 것 외에도 나무를 해야 하고, 관청을 수리하고 부역에 불려 나가는 등, 봄에는 바람과 먼지를 피할 수 없고, 여름에는 모진 더위를 피할 수 없으며, 가을에는 비를 피할 수 없고, 겨울에는 추위를 피할 수가 없어, 1년 내내 쉬는 날이 없습니다. 또,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을 보내고 맞이하며, 죽은 자를 조문하고 병문안을 가야하며, 어린 아이들을 기르는 등, 고생스럽기가 짝이 없습니다. 게다가 홍수와 한발의 재해를 입었는데도 급한 세금이나 부역을 부과하는데, 이는 일정한 때가 정해져 있지 않아 아침에 영(令)을 내리고 저녁에 영(令)을 고치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은 혼란이 거듭되면 전답이 있는 사람은 반값으로 팔고, 없는 사람은 이자가 배가 되는 빚을 냅니다. 이리하여 농지나 집을 팔고, 아들과 손자를 팔아 부채를 갚습니다"라고 상소를 올렸던 것이다.

한 국가를 운영하는 위정자들이 아침 회의 때 계획을 알려 주면서 준비를 하라고 해서 한참 준비를 하고 있는데, 오후에 또다시 계획이 바뀌었다고 하면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가. 이렇게 '조령모개(朝令暮改)'식으로 하면 모든 정부조직이나 사회조직, 기업, 심지어 공부하는 학생들까지도 우왕좌왕하게 되고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 일을 해 낼 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국가의 백년대계(百年大計)의 정책은 말할 필요도 없으며 이미 시행되고 있는 멀쩡한 법령마저도 국민의 안위보다는 집권자들의 권력연장이나 사사로운 욕심을 위해 다수(多數)의 횡포로 마구 바꾸고, 심지어 부분적이지마는 헌법까지 손을 보아 헌법을 훼손하는 일을 서슴없이 자행하여 부정을 합리화 시키고 부패를 정당화시키는데 뒷받침하도록 획책하고 적극시행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우리는 이러한 잘못된 정책운영을 역사와 현실을 통해서도 잘 느끼고 있다.

권력을 잡은 그 집단의 입장이나 권력의 연장을 위한 제도적 보완이라는 미명(美名)아래 잘못된 사리사욕(私利私慾)이 국가의 법령을 자주 바꾸어서는 국민들이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하고 정부를 불신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지난날 우리 주위에 가장 극명하게 느끼던 조령모개 정책이 교육정책이 아닌가 싶다. 수많은 학생들이 교육정책의 빈번한 개정으로 어려움을 겪었었다. 그리고 경제정책, 부동산정책, 심지어 나라를 지키는 국방정책까지 바꾸는 위험한 정권도 있었다.

옛 속담에 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고려의 정책이나 법령은 사흘 만에 바뀐다)이라는 말이있다. 이는 조선왕조 때 가장 현군(賢君)이셨던 세종대왕(世宗大王)께서도 언급하시며 걱정하셨던 부분이다.[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세종 18년 병진(丙辰), 윤(閏)6월 23일]

일례로 세종대왕이 평안도 도절제사(都節制使)에게 외적(外敵)의 침입에 대비(對備)하기 위해 봉수대(烽燧臺)설치를 명한다.

세종은 "대저 처음에는 근면하다가도 종말에 태만해지는 것은 사람의 상정(常情)이며, 더욱이 우리 동인(東人)의 고질(痼疾)이다. 그러므로 속담에 말하기를 "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이라고 하지만, 이 말이 정녕 헛된 말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나라의 영(令)이 삼일 동안만 유효하고 그 다음은 변경되어 지속함이 없는 한심한 사태를 지적한 적당한 용어라고 생각한다. 이는 비단 고려 때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든지 다 있는 상황이겠지만 유독 우리나라의 역사에 많이 등장하는 격언임에 틀림이 없다.

임진왜란을 겪은 명재상 유성룡(柳成龍)도 재상 시절 공문을 만들어 하인에게 주면서 신속한 전달을 지시했다. 3일 후 관청에 확인한 바 공문이 전달되지 않음을 알고 확인해보니 하인이 아직 보관하고 있어서 혼을 내며 그 이유를 물으니 하인이 "3일 지나면 또 다른 지시가 있을 텐데 무엇 하러 수고스럽게 전합니까?" 유성룡은 "관리들이 이 모양이니 백성들의 고충이 오죽하겠는가?"라고 하며 씁쓸해 했다는 후문이다.

이는 명령하는 자들은 느끼지 못하지만 이를 직접 겪어야 하는 백성들의 고충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것을 알아야 한다.

조선 말기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선생의 말이 언뜻 스친다.

"人知坐輿樂 不識肩輿苦(인지좌여락 불식견여고)/사람들은 가마 타는 즐거움은 알지만 가마 메는 괴로움은 알지 못한다." 높은 직분이 되면, 아랫사람들의 고통을 알 수 없는 희한한 병(病)에 걸리는 모양이다.

장상현/ 인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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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6척(尺)은 일보(一步), 백보(百步)가 일묘(一畝) = 약 52평) 백묘(百畝)는 약 5200평이다. 맹자(孟子) 양혜왕 상편(梁惠王 上篇 참조) 명문당(明文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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