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제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제천 군지' 265페이지 첫머리 부분…제천군지는 '회원 명부 승평계, 1893년 조직된 회원 명단'이라고 기록했다.청풍승평계 회원 명단은 이름과 직책, 본관, 태어난 해 등이 기록돼 있다. 제천=손도언 기자 k-55son@ |
1893년 제천시 청풍면에서 조직된 국악관련 단체가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조선말 제천에서 조직된 국악관련 단체가 학계에서 '국악관현악단'으로 인정받는 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국악관현악단으로 우뚝 서게 된다. 무엇보다 '철도, 석탄, 시멘트, 잿빛 도시' 등의 부정적인, 즉 삭막한 도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제천시는 국악의 고장이나 예술의 고장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기회다. 일단, 취재결과 국내 최정상 국악 지휘자 4명은 '조선말 제천 국악관련 단체가 지금의 국악관현악단 형태를 갖춘 것으로 보여진다'는 의견을 내놨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은 공식적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국악관현악단'이다.
악단은 홈페이지를 통해 1965년 국악의 현대화, 대중화, 세계화를 목적으로 창단된 한국 최초의 국악관현악단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아시아·미주·유럽 등지의 수많은 해외 공연과 340회의 정기공연, 그리고 2000여회의 특별공연을 통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상징하는 국악관현악단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악단의 단원은 40여명이다. 지휘자, 부지휘자, 악기별 수석 단원, 그리고 일반 단원 등으로 구성됐다. 단원들은 가야금과 거문고, 대금, 해금, 소금, 피리, 아쟁, 타악 등을 다룬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 관계자는 "현재 우리나라 최초의 국악관현악단"이라고 말했다.
1965년 7월 4일 국립극장에서 열린 '국악관현악과 민속예술의 밤' 공연 안내인쇄물.<국악음반박물관 제공> |
바로 '청풍승평계'라는 국악관련 단체다. 청풍승평계는 128년 전, 제천시 청풍면에서 창단됐다. 그렇다면 청풍승평계라는 국악관련 단체가 현재의 국악관현악단과 얼마나 비슷한지 비교 분석해 봤다. 분석 결과는 놀라웠다.
먼저 '조직'부터 살펴봤다.
1969년 제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제천군지와 학계에 따르면 1893년 창단된 제천 청풍승평계는 33명의 단원으로 출발했다. 현재의 국립 및 시립 등의 국악관현악단과 비슷한 규모다. 제천 청풍승평계는 수좌와 통집, 교독, 총률 등 현재 국악관현악단의 지휘자와 악장 등처럼 직급도 갖췄다.
수좌는 청풍승평계의 최고령 자인데, 지금의 국악단의 단장쯤 된다. 또 통집은 수좌가 정하는데, 악단의 사무 등의 감독 역할을 한다. 지금의 사무국장 지위다. 교독은 기악 등을 가르치고 총감독하는 자리다. 지금의 악단 지휘자 급이다. 총률은 악단 가운데서 최고로 능한 사람을 말한다. 지금의 수석단원 쯤 되는 것이다. 그리고 율원이 있는데, 지금의 단원이다. 이처럼 청풍승평계는 수좌(단장)부터 율원(단원)까지 골고루 조직을 갖췄다.
'악기 분포'는 얼마나 닮았을까.
청풍승평계의 악기는 현재의 국악관현악단처럼 다양했다.
청풍승평계의 단원들은 풍류가야(정악 가야금), 산조가야(산조가야금), 양금, 현금(거문고), 당비파(현악·8음), 향비파(현악·8음), 피리(향피리), 젓대(대금), 장고 등을 연주했다. 악기 분포 역시, 현재 국악단과 비슷하다. 특히 가야금 산조와 정악을 구분해 연주한 것으로 봐서 궁중음악이나 민속음악까지 연주한 것으로 보여진다. 단원(계원)들은 악보 53장, 506률을 가지고 연주했다. 아쉽게도 악보는 분실되고 없어졌다. 이들이 사용했던 악기 등도 6.25 전쟁 당시, 모두 사라졌다. 단원들 역시, 이때 모두 향리로 흩어졌다.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창단식 보도…1965년 2월 27일자 동아일보 기사.<국악음반박물관 제공> |
청풍승평계의 규칙도 있었는데, 매우 엄격했다. 현재의 국악관현악단과 비슷한 모양새를 갖췄다.
청풍승평계의 규칙은 1부터 20가지로 구분해 놨다.
단원들의 모임 일자는 매달 16일로 정했다. 모임 시, 단원 가운데 술주정이나 싸움 등의 폐단이 있을 경우 중벌로 다스린다. 젊은 단원이 연장자를 능멸하거나 투쟁할 경우 상벌로 시행한다. 상벌은 3냥, 중벌은 2냥, 하벌은 1냥이다. 조선시대 화폐 1냥은 현재 화폐로 8만원 선이다. 또 모든 단원 중 애경사(哀慶事)가 있으면 부조금을 냈고, 벌칙 등을 위반했을 경우 청풍승평계에서 떠나야 한다는 등의 엄격한 규칙도 있었다.
뿐만아니라 정기연주로 보여지는 대목도 있다.
청풍승평계 규칙 3항을 보면 매년 춘추에 모든 회원은 '승경한다'라고 돼 있다. 승경이라는 표현은 좋은 경치를 보러가는 것인데, 아마도 뛰어난 경치에서 정기적으로 연주회를 한 것 아니냐는 게 학계의 설명이다. 현재 국악관현악단의 예산, 사고 시 감봉 및 벌점, 위촉과 해촉, 운영·사업 방향, 1년 정기연주 계획 등의 규칙과 매우 흡사하다. 특히 이같은 내용은 제천군지 259페이지에서 268페이지까지 9폐이지 가량, 폭넓게 기록해 놨다.
제천시 청풍면 청풍대교 인근의 옛 '평등사'… 평등사는 청풍승평계 악기 보관장소로 알려져 있다. 1985년 수몰되면서 평등사와 악기 등도 유실됐다. <제천 향토사가 류금열 학자> |
이용탁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예술감독은 "제천에서 '청풍승평계'라는 국악관련 단체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며 "관현, 현악, 타악 등의 규모와 단원들의 모습 등을 종합해 봤을 때 국악관현악단 모습을 갖춘 것으로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임상규 경기도 안산시립국악단 상임지휘자는 "1800년도 말, 제천 청풍승평계 국악단체가 있었다는 것은 국악계가 들썩일만한 비상한 관심"이라며 "지금이라도 국악·민속·역사학계가 모여서 청풍승평계의 발굴과 학술세미나, 고증 절차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우 전 김천시립국악단 지휘자는 "규모와 형태, 규칙 등으로 볼 때, 국악관현악단 모습을 갖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학계가 모여서 발굴작업을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류금열 제천 향토사학자는 "제천 청풍지역은 사실 악성 우륵의 고장"이라며 "신라의 대악을 전수시킨 우륵이라는 정체성과 그 예술혼을 이어가기 위해 이같은 국악단체가 제천에서 조직된 것은 필연적"이라고 말했다.
노재명 국악학자는 "제천 등 충북이 국악의 불모지가 아니고, 국악의 성지로 봐야 한다"며 "128년 전 제천에서 창단된 청풍승평계 악기 편성에 산조가야금이 포함됐다는 사실은 일찍부터 충북도 특유의 중고제 스타일 가야금산조가 연주됐음을 뒷받침하는 기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중요한 역사가 수록된 원본 문서가 존재했기 때문"이라며 "1969년 제천군지 출판 때 참고자료로 쓰였을 텐데, 군지 발간 이후 그 원본 문서는 어디에 소장돼 있는지 행방을 알 수 없게 돼 아쉬운 대목"이라고 덧붙였다.
제천=손도언 기자 k-55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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