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는 다분히 내년의 선거를 의식한 지자체장의 포퓰리즘이자 동족방뇨의 일시적 선심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정작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약자의 불편하고 가려운 등을 시원스레 긁어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어려운 대상을 위한 따뜻한 겨울나기 김장 봉사의 아름다움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김장은 겨우내 먹을 김치를 한목에 담가두는 전래의 풍습이다. 추운 겨울철에는 신선한 채소를 구하기 어려웠음으로, 초겨울에 김치를 많이 담가서 저장하는 풍습이 발달하게 되었다.
김치는 밥과 함께 아침.저녁으로 먹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저장성이 뛰어나다. 비타민이 많이 보유되어 있고, 장을 튼튼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는 채소 염장식품의 하나이기도 한 것이 바로 김치다.
이처럼 김치는 효용성이 큰 필수식품이기 때문에 어느 지역, 어느 가정에서나 담그며 그래서 김장김치는 '겨울의 반 양식'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김치를 담그는 재료로는 배추, 무, 열무, 오이 등 다양한 종류의 채소가 이용되는데, 주로 배추와 무가 쓰인다.
여기에 미나리, 갓, 마늘, 파, 생강, 고춧가루와 같은 향미가 있는 채소가 부재료로 이용되고, 소금과 각종 젓갈은 간을 맞추기 위하여 사용한다. 따라서 김장은 각종 채소와 식자재의 동반 소비를 견인하는 일등공신이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과학적 발효식품이며 나눔의 미덕까지 엿볼 수 있는 한국의 독자적 식문화가 바로 김치인 것이다. 김장하는 날은 또한 일종의 잔치이기도 했다.
지금과 달리 예전에는 한 집안의 김장을 위해서는 배추를 씻고 무를 채 썰고 양념을 버무리는 일만으로도 2∼3일이나 걸렸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서로 도와가며 김장을 하는 십시일반 풍속이 있었다.
이때 김장을 담그는 집에서는 맨입으로 눈감지 않았다. 감사의 뜻으로 돼지고기를 넉넉하게 사다가 삶아놓았다. 이어 배추의 노란 속잎과 양념을 준비하여 일하는 사람들이 먹도록 하였는데 이것을 '속대쌈'이라고 한다.
지금도 미풍으로 전하여지고 있는 우리의 아름다운 나눔 문화라 하겠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조류도 바뀌었다. 이웃집에 이사를 와도 떡을 돌리기는커녕 아예 인사조차 생략하는 에고이즘(egoism) 습관이 굳어진 탓이다.
이런 악습(?)을 타파하고 김장을 담가 이웃과 함께 하는 '천사들의 합창'이 이어지고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되는 즈음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작년엔 불발에 그쳤던 따뜻한 겨울나기 김장 봉사의 아름다운 손길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최근 엑스포 남문광장 무빙쉘터와 대덕구 청렴관 앞 등지에서 펼쳐진 협찬 기업과 자원봉사자들의 아름다운 협업으로 인해 재탄생한 김장 담가 이웃과 나누기 행사를 거듭 취재했다.
현장을 취재하면서 자신의 가족이 먹는 김치라는 일념으로 한땀 한땀 정성을 쏟아 김장김치를 버무리는 자원봉사자들의 구슬땀은 그 어떤 보석보다 빛나는 훈장으로 보였다.
비록 가멸다(재산이 많고 살림이 넉넉하다)의 입장이 아닐지라도 봉사한다는 마음가짐 하나로 한걸음에 달려와 김장 행사에 매진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에서 훈훈함을 발견했다.
빅토르 위고는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음을 확신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김장 봉사의 고운 손길은 어려운 이웃을 보듬는 베풂의 좋은 습관이었다. 덩달아 '김장은 사랑이며 나눔'이라는 지며리(차분하고 꾸준한 모양)의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에 흐뭇했다.
홍경석 / 작가·'초경서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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