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사색을 사색해 보자 '습득도(拾得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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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사색을 사색해 보자 '습득도(拾得圖)'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1-11-19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울긋불긋 우거진 가을의 뒷모습이 스산하면서도 우아하다. 나무 종류마다 단장하는 모습이 달라 더욱 황홀하게 한다. 강원도 설악산, 서울 북한산, 경남 가지산, 전라도 내장산과 지리산 등이 단풍으로 유명하다. 충청 지역 계룡산이나 대둔산, 속리산도 빼 놓을 수 없는 단풍명소이다.

생물의 생태에 맞춘 발걸음은 쉽지 않다. 갑사 단풍, 올해도 너무 일찍 찾아서 보지 못했다. 뜨락을 쓰는 모습이 눈에 띈다. 운치를 쓸어내는 것일까? 가을을 밀어 내는 것일까? 오는 겨울 환영 준비 하는 것일까? 그 모습을 보면서 새삼 깨닫는다. 이래저래 사색의 계절이다.

무엇이고 즐기면 행복하고 일이 되면 힘들다. 청소하면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것 같아 시원하고 개운하다. 무엇인가 진일보했다는 기분이다. 어려서 시골생활 할 때 간혹 마당을 쓸었다. 알아서 한 일이 아니니 그저 힘들기만 했다. 얼마 전, 3년여 산속에 살았던 적이 있다. 관리 지역이 워낙 넓어 낙엽 치우는 일이 고역이었다. 가을이면 매일 직원들과 함께 쓸어냈다. 운치와 멋을 쓸어 내다니, 힘들었을 직원들 원성이 높았다. 당시엔 인공이 가해진 곳은 쓸어야 마땅하다 생각했다. 자연미와 인공미, 그것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움도 멋지다는 생각이었다. 함부로 굴러다니는 낙엽 길을 걸으며 사색이 나뒹구는 모습을 본다. 입장에 따라 다른 것일까, 지금은 낙엽 길이 더 좋다.

그림은 김명국(金明國, 생몰미상, 조선 도화서 화원)이 그린 '습득도'이다. 우리가 통상 입에 올리는 습득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남이 잃거나 버려진 물건을 주워 얻는 것(拾得)이고, 다른 하나는 학문이나 기술 등을 배워 익히는 것(習得)이다. 여기에서는 사람 이름이다.



중국 당시대 천대산(天臺山) 국청사(國淸寺)에 풍간선사(豊干禪師)라는 사람이 살았다. 어느 날 강보에 싸인 아이를 데려다 길렀는데, 주워 온 아이라 하여 아이 이름을 '습득'이라 하였다 한다.

경전이 아닌 명상 또는 행동, 문답을 통하여 순식간에 얻는 깨달음에 무게를 두는 것을 선불교라 한다. 문자와 형식에 집착하지 말자는 '불립문자'(不立文字), 법이 경전에 있지 않다는 '교외별전'(敎外別傳)을 내세우며, 마음속 진리를 깨닫자는 '직지인심'(直指人心), 자기 안에 있는 불성을 보라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주장한다. 그 깨달음이나 득도 순간을 암시적으로 그린 그림이 선종화(禪宗畵) 또는 선화(禪畵)이다. 선종의 전법 방식이기도 하다. 선문답 속뜻을 필부가 어찌 알랴? 이러저러한 자료를 보아도 천학비제(淺學菲才)의 마음에 쉽게 와 닿지 않는다.

괴팍한 성격의 기인이며 선승인 풍간선사, 제자인 한산(寒山)과 습득에 얽힌 기벽과 일화, 파격적인 시가 많이 전한다. 세 사람을 삼은사(三隱士) 또는 국청삼은(國淸三隱), 세 사람 시를 삼은시(三隱詩)라 부르기도 한다. 풍간선사는 아미타불阿彌陀佛), 한산은 문수보살(文殊菩薩), 습득은 보현보살(普賢菩薩)의 화신(化身)이라 거론되기도 한다.

그림도 여러 형태로 전한다. 세 사람 모두 등장시키기도 하고, 호랑이를 더 하기도 한다. 한산과 습득이 산발하고 누더기 차림으로 파안대소하기도 한다. 시권(詩卷)을 펴고 읊조리는 습득과, 붓으로 파초 잎이나 두루마리에 시를 쓰는 한산. 습득이 빗자루 들고 서거나 길가에서 빗자루위에 웅크리고 앉아 사색에 잠기기도 한다. 전해지는 수많은 기행과 설화에서 화가마다 주목하고,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리라.

가힣
김명국의 습득도, 지본수묵, 64.5 × 52.8cm, 일본 시모노세키 시립박물관 소장
선종화가 유행하던 중국 남송시대와 원나라 때에 즐겨 그려졌다. 사찰 벽화로도 남아있고 현전하는 작품으로 미루어,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그려졌을 것으로 생각되나 전하는 작품은 흔치 않다.

선종화는 오랜 운필의 숙달과 마음의 깊이 없이는 잘 그리기가 어렵다 한다. 김명국의 다른 그림, 달마도를 떠올리면 될 듯하다. 더벅머리에 함부로 자란 수염, 남루한 차림으로 깍지 낀 손을 빗자루에 얹고 그에 기대어 서있는 모습이다. 불가에서 말하는 차수이입(叉手而立) 화두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표정과 달리 갈필의 선이 우아하고 율동적이다. 속세를 떠난 선승의 안빈낙도(安貧樂道) 삶이 배어나오기도 한다.

사색을 어찌 구체적으로 말 할 수 있으랴. 백이면 백, 모두 다르리라. 또한, 생각하지 않거나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생각하고 뛰느냐, 뛰면서 생각하느냐, 뛰고 난 다음 생각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나 더 보탠다면 깊이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사색을 사색해 보자.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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