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후 혹은 두 달 후,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했던 프랑스아즈 사강의 미발표 유작을 묶은 '마음의 심연'(프랑스와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민음사 펴냄, 304쪽)이 사랑 앞에서 갈등하는 남녀의 심리를 사강 특유의 문체로 담담히 그려냈다면, '끝까지 살아 있는 존재'(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지음, 최종술 옮김, 민음사 펴냄, 324쪽)는 소설가로 잘알려졌지만 사실은 러시아 시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파스테르나크의 대표시를 묶었다.
▲이토록 깊은 '마음의 심연'= 사랑과 이별의 젊은 시절을 지났거나, 지나고 있는 사람이라면 프랑스와즈 사강이라는 그 이름만으로도 그 시절의 아련했던 감정을 떠올릴수 있을 것이다.
열 아홉에 발표한 '슬픔이여 안녕'을 시작으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한달 후, 일년 후' 등으로 프랑스 현대 문학의 아이콘이자 '사강 신드롬'을 일으켰던 프랑스와즈 사강의 '마음의 심연'은 사강의 아들인 드니 웨스토프가 지난 2004년 사강의 사망이후 발견한 원고를 10여년간 엮고 다듬어 낸 책이다.
냉소적이고, 담담한 문체의 사강이 그려냈던 전작의 소설들과 다르게 미완성 유작인 만큼 불안전하고 미완성이지만 사강 특유의 섬세한 문체와 재기발랄할 세계를 만날수 있다.
소설은 프랑스 지방 재력가인 앙리 크레송과 그의 아들 뤼도빅 크레송, 아내 마리로르와 마리로르의 엄마인 파니 크롤리의 관계와 감정을 그린다.
삼각관계와 나이차가 많은 연상 연하의 사랑을 다뤘다는 점에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연상케하지만, 채 완성되지 않은 거친 필체 때문인지 또다른 사강의 모습을 만날수 있다. 여기에 사랑 없이 유지하는 결혼을 유지하는 부부, 허세와 겉치장을 중시하는 인물들을 묘사하면서 사강 특유의 풍자를 만날수 있다.
▲서정성의 변주로 만난 '거시적 주제'=러시아 혁명기에 살았던 작가 답게 개인적 체험보다, 역사적 체험, 혁명의이 의미, 인간과 자연의 관계 등 거시적 주제를 시로 풀어낸 파스테르나크의 시는 단순히 혁명을 노래한 선동성보다는 오히려 치열한 고민과 내적 갈등을 그린 서정성에 더 무게를 둔다.
인간과 자연의 긴밀한 관계성에 주목하고, 존재하는 모든 것이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노래한 파스테르나크의 시는 '시적인 것'과 '산문적인 것'의 전통적 경계를 뛰어 넘는다. 페스테르나크가 '무경계의 시인'으로 불리는 이유다.
소설 닥터 지바고의 노벨문학상 수상에도 불구하고 조국에 남는 '내적 망명'을 결심한 파스테르나크는 지식인이자 예술가로서 삶과 사회주의, 혁명의 관계에 대해 깊은 사유를 하며 '종이가 아닌 운명속에 공백'을 남겨 놓으며 삶과 생명을 찬미했다. 코로나 19시대 우울감과 불안감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강인한 그의 신념과 서정성이 치유가 되는 이유다.
오희룡 기자 hu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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