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희 기자 |
채식을 시작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처음엔 닭고기를 안 먹겠다고 선언하더니, 그 뒤엔 돼지고기까지 안 먹겠다고 했다. 몇 개월이 지나자 고기는 더 이상 먹지 않았다. 육류를 제외한 음식을 먹을 때까지만 해도 같이 만나 식사를 하는 자리가 어렵진 않았다. 고기만 제외해도 먹을 음식은 많았다.
해물찜을 먹으러 간 날도 여럿 있었다. 새우를 까먹던 친구가 "너무 모순인 거 같아. 사실 고통은 갑각류가 더 느낀다는데"라는 말을 툭 내뱉더니, 이후엔 결국 해산물도 먹지 않겠다 선언했다. 완전 채식을 하겠다는 것이다. 채식에도 여러 유형이 있다는 점을 그때 처음 알았다. 친구의 식단 폭은 확실히 좁아졌다. 붕어빵조차 우유나 달걀이 들어갔을 수 있어 먹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꽤 실감했다. 그러면서 내가 얼마나 많은 동물의 것을 섭취하고 있는지도 깨달았다. 처음 알게 된 것 투성이었다.
사실 그동안 모른 체 하며 살아왔던 것일 수도 있다. 지역에 많이 없는 독립영화관을 찾아 ‘옥자’를 보면서 슬퍼했던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면,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육식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폭력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모른 체했던 거다.
인간이라는 이유로 동물을 피지배계급으로 정한 뒤 가하는 폭력을 깨닫게 된 뒤로 먹는 즐거움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화장품, 욕실용품 등을 살 때도 비건 대체 상품이 있는지 찾아보게 된다. 집에서 배달음식을 자주 시켰는데, 어느 순간 육류를 시키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기도 했다. 애매하게 행동했다. 이미 알아버린 이상 육류를 이전처럼 소비할 수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끊어내지도 못했다. 그러나 고기를 먹을 때면 채식을 하는 친구의 말이 자꾸만 떠오른다. 고깃집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으며 "남의 살 뜯어 먹는 냄새"라고 했던 말이. 아는 것과 하는 것의 간극에서 헤매고 있었으나, 더 이상은 아는 단계에만 머무를 순 없는 시점에 온 것이다. /김소희 정치행정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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