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석 소장 |
위 법안을 대표 발의한 4명의 의원은 11월 3일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에서 법안 논의를 더는 미룰 수 없다며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할 것을 촉구하고 동시에 여야 대선 후보들에게 평등법 제정에 관한 입장을 밝힐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이에 앞서 시민사회는 지난 6월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입법 청원 10만 명을 달성하고, 두 명의 활동가가 지난 10월 12일 부산을 출발, 10월 29일 대전을 거쳐, 11월 10일 서울 국회 앞까지 도보 행진을 통해 국회의 법안 심사를 촉구했다.
그러나 국회는 애초 11월 10일까지였던 평등법안(차별금지법안)의 청원 심사기한을 2024년 5월 29일까지로 연기해 입법추진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이고, 주요 대선후보들도 법안 제정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헌법 제11조에서는 평등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고, 양성평등기본법, 남녀고용평등법, 장애인차별금지법, 고용상연령차별금지법 등 개별 법률을 제정하여 평등과 차별금지의 원칙을 구체화해 실행하고 있다. 아울러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도 차별금지사유와 영역을 규정하여 차별피해에 대한 조사와 구제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는 차별금지의 사유로 19가지를 규정하고 있고, 지난해 위원회가 제시한 평등법 시안에는 20가지의 차별금지 사유를 나열하고 있다. 여기에는 현재 개별 법률에 장애, 성별, 나이 등이 포함되어 있다. 차별의 사유와 양상은 고정되지 않고 시대의 변화와 함께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현실에서는 두세 가지 이상의 복합적인 차별사유로 인한 피해도 빈번하다. 예를 들어 '여성+장애인+나이'라는 복합적 차별 조합이 가능하고, 그 외 다른 차별 사유의 복합적 조합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현실에서 발생 가능한 차별의 조합은 수십 가지 이상일 수 있다.
그러므로 차별금지 사유별로 개별 법률을 제정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효율적이지도 않다. 평등법 또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여전히 평등법 제정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반대하는 측에서는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지 않았다, 동성애를 조장한다,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주장은 모두 사실과 다르다. 먼저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 우리 국민 대다수는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4월 국민 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서 10명 중 7명이 차별문제를 이대로 두면 사회갈등이 심화할 것이며, 10명 중 9명은 평등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2년 가까이 코로나19로 인해 특정 집단에 대한 배제와 혐오가 심화하면서 평등법 제정의 필요성은 지난해보다 오히려 더 높아졌다. 뿐만 아니라 차별금지를 포함한 인권은 사회적 합의의 대상이 아닌 보편적 기준이고 평등이라는 헌법 가치를 실현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다.
다음으로 평등법 제정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주장도 과장된 것이다. 평등법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자는 것이지 동성애를 장려하고 조장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 우리 민법에는 동성동본 혼인 금지 조항이 있었는데 헌법 불합치 결정으로 폐지되고 지금은 8촌 이내 혈족 간 혼인 금지 등으로 대폭 축소됐다. 동성동본 금혼 제도가 폐지됐다고 하여 동성동본인 배우자를 일부러 찾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과거 동성동본 금혼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이별을 선택하거나 혼인신고를 못 하고 있던 사례들이 사라짐에 따라 통계적으로는 동성동본 혼인 건수가 증가했을 수 있으나 이것을 동성동본 혼인을 장려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평등법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평등법의 적용 영역은 고용, 재화, 용역, 행정서비스 등 제한된 영역에 적용되고 설교와 전도와 같은 종교적 행위에는 적용되지 않으며, 합리적 이유가 있는 경우 차별로 보지 않도록 설계하고 있다.
17대 국회부터 21대 국회까지 회기 때마다 평등법 또는 차별금지법이 반복적으로 발의돼왔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 해결해야 할 차별의 문제는 많지만 이를 해결할 법률이 부재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더욱이 15년 동안 발의와 폐기를 반복하는 동안 국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조차 없었다는 것은 입법부의 역할을 회피한 것과 다름없다. 이제는 그 어떤 이유로도 평등법에 대한 논의와 제정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김재석 국가인권위원회 대전사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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