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대를 맨 자화상, 빈센트 반 고흐, 1889년 제작. |
반 고흐의 자화상을 보고 있으면 느껴지는 공통분모의 감정은 극도의 공허함이다. 그는 실제 삶에서 예민하고 나약한 기질 탓인지 필요 이상으로 스스로를 괴롭혔고, 실제보다도 더 우울하고 고통받는다고 인식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자화상은 예리한 감수성을 가진 유리 같은 영혼이 고독으로 인해 조금씩 금이 가다가 결국에는 박살이 나버리는 과정처럼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그의 자화상이 그의 내면을 이해하고, 화가로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귀한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마주 대하기가 불편할 때도 있다.
고흐는 불행의 모든 조건을 갖춘 예술가로서 짧은 생애 동안 상당히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생전에는 그림에 대한 평가는 물론이고, 단 두 점의 그림만 팔았을 정도로 명성도 얻지 못했다. 그의 불운한 삶은 그가 앓았던 정신질환으로 더욱 극대화되었는데, 무엇보다도 고흐의 삶을 더 극적으로 만든 사건은 1888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고흐가 귀를 자른 사건이었다.
오래전부터 화가들의 공동체를 꿈꿔왔던 고흐는 아를에 노란 집을 마련하고는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을 이곳으로 초대했다. 여기서 고흐와 고갱은 함께 살며 작품에 대한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함께 작품 제작에 몰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갱과 빈번히 성격 충돌을 일으켰고 서로를 불신하게 되자,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반 고흐는 스스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여 격분을 이기지 못해 자신의 왼쪽 귀를 면도칼로 잘라버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고갱은 파리로 떠났고 두 사람의 우정은 파국을 맞았다. 그 후로 고흐는 미친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는데, 고흐는 스스로가 미친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힘들고 슬펐다. 2달 후 병원에서 퇴원한 반 고흐는 귀에 붕대를 감은 모습의 자화상을 두 점 그렸는데, 이 자화상 속의 고흐는 그 어떤 자화상보다도 슬퍼 보인다. 눈은 허공을 쳐다보는듯하고, 삶을 향한 그 어떤 의지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보다는 상실과 상처, 불안에서 비롯된 우울과 절망이 가득하다.
고흐는 자신이 귀를 자른 자신의 행동도, 이것을 그림으로 그린다는 것도 몹시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고갱과의 이별이 이보다 더 힘들었음이 느껴진다. 고독, 외로움을 이기는 힘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