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베를린 곳곳에 남겨진 홀로코스트와 반성의 기록

[기획] 베를린 곳곳에 남겨진 홀로코스트와 반성의 기록

대표적 추모 공간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 조성
2711개 다른 높낮이 조형물, 을씨년스러움 속 여러 감정 전달
"감추는 것 없이 있는 그대로… 생존자 있을 때 공간 갖춰야"

  • 승인 2021-11-10 17:36
  • 수정 2021-11-10 17:38
  • 신문게재 2021-11-11 5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중도일보 창간 70주년 기획-골령골 평화공원, 추모를 넘어 인권의 공간으로]

4. 홀로코스트를 기억·교육하는 독일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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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
2차세계대전 당시 히틀러가 이끈 나치는 1000만 명이 넘는 이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유대인을 비롯해 동성애자, 장애인, 정치범 등이 열차에서, 수용소에서, 가스실에서 죽어 나갔다. 대량학살 또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의미하는 홀로코스트는 세계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학살로 꼽힌다.

오늘날의 독일은 이러한 학살의 역사를 뼈아프게 반성하며 도시 곳곳에 그 흔적을 남겨 놓았다. 기자가 지난달 25일부터 나흘간 머문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는 홀로코스트의 비극이 도시 전역에 기록돼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성은 도심 한가운데 조성된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이다. 0.9m×2.35m의 모두 다른 높낮이를 한 비석 모양 콘크리트 조형물 2711개가 브란덴부르크 문 남쪽 인근 1만 9000여㎡ 면적에 설치돼 있다.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의 설계로 조성된 이곳은 유럽에서 가장 큰 유대인 추모 시설이다. 2005년 설치를 마쳤지만 이 공간에 유대인을 위한 추모시설 조성을 검토한 건 독일이 통일을 이루기 전인 1988년도부터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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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물 안으로 들어갈수록 높이가 커지는 구조.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은 조형물 사이로 들어갈수록 그 높이가 커지는 구조다. 지상과 같은 높이부터 최대 4.7m까지 높아지는 조형물은 학살된 유대인에 대한 추모를 의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이 시시때때로 첫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을씨년스럽고 엄숙하길 바란다"는 건축가 아이젠만의 뜻대로 조형물 사이로 들어갈수록 침침해지고 고립되는 분위기를 연출해 당시 유대인의 신경을 대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곳에서 만난 얀 에베어트(Jan Ewert) 씨는 "베를린에 있는 친구를 보러 왔다 이곳에 들렀다"며 "무엇으로 이뤄진 시간들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 자동적으로 숙연해지게 된다"고 말했다.

베를린에 위치한 이런 장소들에선 현장 수업 나온 교사와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교사는 차분하게 홀로코스트에 대해 설명하고 학생들 대부분은 그 이야기를 집중해 듣는 모습이다. 독일에서 어린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거주 중인 한 한국인은 "자녀가 학교에서 배웠다며 설명하는 것을 들으면 과거 독일이 저지른 일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한다"며 "있는 그대로 국가적 사실을 미래세대에 알리고 반성해야 한다는 것을 계속 교육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베를린 시민 하럴드 에르멜(Harald Ermel) 씨는 "과거를 잊지 않는 것과 나치 통치 시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배워 이 같은 과정이 시작할 조짐이 보일 때 깨어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교육물과 기념물, 연구는 역사의 진실을 유지하고 과거의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이곳 지하에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사실적 기록이 상세하게 전시된 공간도 있다. 지상에 있는 조형물이 추상적이라면 지하의 공간은 유럽 각지에서 수집한 나라별 유대인 학살에 대한 기록이 구체적으로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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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 지하 전시 공간. 지상에 있는 조형물과 같은 크기의 전시물로 이뤄져 있다.
또 다른 공간인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Judisches Museum Berlin)은 학살을 비롯해 유대인의 역사를 전시하는 공간이다. 건축가 다니엘 리벤스킨트가 설계한 지그재그 모양의 특징으로 유명하다. 박물관 내부 바닥은 기울어진 모양으로 돼 있는데, 외부로 이어진 정원에 다다르면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 이는 유대인에 대한 기울어진 시각을 의미하며 편견 없이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색을 권한다.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전시 공간 중 가장 많은 울림을 주는 'Fallen Leaves' 공간은 고통스러운 유대인의 얼굴을 형상화한 쇠가 바닥에 떨어져 있다. 이곳을 관람객이 걸으면 쇠가 충돌하며 소리를 내는데 마치 유대인들이 수용소로 향하던 열차와 철도를 상징하는 듯한 효과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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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는 이 외에도 토포그래피 박물관(테러의 지형)을 비롯해 과거 베를린 장벽을 남겨둔 공간 등에 과거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끊임없는 반성으로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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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포그래피 박물관(테러의 지형) 외부 전시장.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에서 근무하는 아담 커펠프로니우스(Adam Kerpel-Fronius) 프로젝트 매니저가 메모리얼 조성 과정을 설명하며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 국가와 국민, 주변국가에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지, 변한 독일을 보여줄지 중요했다"고 설명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10년 전 노근리에 방문한 경험이 있는 아담은 대전 산내 골령골에 세워질 추모 공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아담은 "그곳을 찾는 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전달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라며 "감추는 것 없이 잘못한 것 있는 그대로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아담은 또 "과거 역사를 경험한 세대가 생존해 있을 때, 그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공간을 갖추고 보여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베를린=임효인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으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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