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피로 물들었던 과거, 오늘날 평화를 말하는 방식-제주4·3편
1950년 한국전쟁 전후 국가 권력이 대전 동구 산내 산골짜기에서 민간인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그즈음, 학살은 한반도 전역에서도 자행됐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그날의 기억 중 일부는 끊임없는 진상 규명 노력과 투쟁 끝에 오늘날 인권과 평화를 상징하는 현대사로 우리 곁에 자리하고 있다.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알린 제주4·3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아픈 손가락이자 통렬한 반성의 기록이다. 섬 전역이 피로 물들었고 한 집 건너마다 사람이 죽는 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와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정의한 제주4·3사건이다. 이 법에 따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결성됐고 위원회 건의에 따라 2008년 3월 제주시 봉개동에는 제주4·3평화공원이 개관했다.
제주4·3평화공원 내 4·3행방불명인 표석 중 대전지역 행방불명 희생자 위령비 모습. 대전 동구 산내 골령골에선 제주4·3사건으로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민간인이 희생되기도 했다. 임효인 기자 |
4·3평화기념관 내 전시실 초입에 놓인 백비. '언젠가 이 비에 제주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
양조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지난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60년이 지난 상태에서 기념관을 조성하는데 4·3에 대한 일차적인 원 기록이 너무 없었다"며 "세월이 흐르기도 했고 과거엔 4·3에 대해 이념적으로 불온시하는 정서가 있어 개인이 갖고 있던 자료도 대부분 폐기 처분됐기 때문"이라며 당시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양 이사장은 이어 "그래서 할 수 없이 예술작품을 동원하기로 했다. 대형 작품과 애니메이션, 영상 등을 중간중간에 배치했는데 반응이 괜찮았다"며 "사료적 가치가 큰 것은 감동을 주지만 되풀이되면 싫증이 날 수도 있는데 4·3에선 예술작품이 포인트가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고 말했다.
양조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4·3평화공원을 개관 경험을 바탕으로 골령골에 조성될 평화공원에 대한 조언을 하고 있다. |
양 이사장은 중국 난징대학살 기념관 사례를 언급하며 유해 발굴이 진행 중인 골령골에서 보다 사실적인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전시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난징대학살 기념관 별관에 가면 유해를 있는 그대로 그냥 보여준다"며 "골령골의 핵심은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인데 그걸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해야 하고 일부라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진짜가 주는 감정이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임효인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으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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