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미란의 세상읽기]큰일이다, 꽃이 예뻐보인다

  • 오피니언
  • 세상읽기

[황미란의 세상읽기]큰일이다, 꽃이 예뻐보인다

  • 승인 2021-11-03 11:27
  • 수정 2021-11-03 14:32
  • 신문게재 2021-11-04 18면
  • 황미란 기자황미란 기자
황미란 칼럼사진
언제부터인가 꽃이 예뻐보인다. 담벼락 들국화도 보도블록 사이 고개 내민 풀꽃도 마냥 사랑스럽다. 꽃이 예뻐 보이면 나이 든 거라는데…. 20대는 시속 20㎞로, 60대는 시속 60㎞의 속도로 시간이 흐른다는 말은 참말이다. 자꾸만 빨라지는 세월의 속도, 벌써 스마트폰의 새 기능이 달갑지 않은 나이가 돼 버렸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다다른 횡단보도, 맞은편 어르신의 모습이 심상치 않다. 100m 달리기를 앞둔 아이처럼 긴장감 역력하다. 호각소리가 나자마자 앞으로 뛰쳐나갈 채비를 하는듯한 모습. 굽은 등 탓일까? 힘껏 부여잡은 작은 가방이 힘겨워 보인다. 보행자 신호에 파란불이 켜지자 남은 시간을 알리는 숫자가 재빠르게도 줄어든다. 분주하게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걸음을 재촉해보지만, 역부족이다. 노인이 도로를 채 건너기도 전, 빨간불이 켜져 버렸다. 야속하리만큼 빨리 끝나버린 보행자 신호. 더뎌지고 무뎌지는 몸 만큼이나 설움도 커졌으리라.

나이듦과 서러움은 필연인가?

도심의 대학병원을 찾은 촌로, 진료를 마치고 병원 문을 나서는 길은 상냥한 주차료 정산원 대신 굳게 잠긴 차단기뿐이었다. 예전처럼 진료 영수증만 보여주면 무사통과 할 줄 알았는데…, 틀렸다. 말 없는 기계 앞에서 머뭇거리는 사이 뒤편 차들이 요란스레 경적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왜 빨리 안 나가냐"는 압박에 놀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 어느 마음씨 좋은 방문객의 도움으로 겨우 병원을 빠져 나올 수 있었지만, 딸 아이 도움없이 대학병원을 찾지 못하는 이유가 또 하나 늘었다.



사람이 있던 자리를 각종 디지털 기기들이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패스트푸드점부터 버스터미널, 병원, 도서관까지 우리 일상 곳곳을 점령한 키오스크(무인단말기). 인건비 절감이라는 강력한 무기와 코로나시대 비대면 확대 분위기를 등에 업고 그 기세가 무섭다. 어딜 가나 위풍당당한 서 있는 키오스크, 안타깝게도 대부분 그 옆에는 안내원이나 직원 호출버튼 따위는 없다. 복잡한 조작법과 난해한 문구, 또 뒷사람 눈치까지 봐야하는 심리적 부담감. 첫 대면에서는 젊은이들조차 어려움을 겪는다는데…. 기기 조작에 서툰 노인들에게는 최악의 발명품, 최고의 불친절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소비자원이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 따르면 70세 이상 노인 5명중 3명은 버스표 발권을 하지 못했고, 패스트푸드 가게에서는 피실험자 모두 주문을 완료하지 못했다고 한다. 누군가에겐 손가락 하나로 쉽고 빠르게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는 디지털 세상이 또 누군가에겐 먹고 싶은 햄버거 하나 마음대로 살 수 없는 '디지털 장벽'이 되어버린 것이다. 최근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자치단체들이 앞다퉈 키오스크 사용법 교육에 나섰고, 정부에서도 관련 기기의 표준화를 위해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OECD 국가 중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대한민국, 20년 후인 2041년에는 국민 3명중 1명이 노인인 나라가 되고 2048년에는 국민 절반이 노인가구가 된다는 통계다. 불편하지만 조금은 느린 보행자 신호, 촌스럽지만 조금은 더 친절한 키오스크 화면이 필요한 이유다. 소망해 본다, 꽃이 예뻐지는 것이 서럽지 않은 날이 오기를…. 편집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3.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