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윈 신기용 대표변호사 |
여느 평범한 날이었다. 저녁 시간에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직접 현장에 나가 사건을 챙기라는 지시가 이어졌다. 살인이라는 무게감과 처음 경험이라는 긴장감이 묘하게 어깨를 짓눌렀던 것 같다.
오래된 집들이 질서 없이 늘어선 동네였다. 해 질 무렵의 고요함 사이로 마을 사람들의 걱정스러운 웅성거림이 배회하는 모습이 이질적이었다. 소리 없이 돌아가는 경찰차의 사이렌 불빛과 부산한 경찰들의 움직임이 사건 현장을 가리키고 있었다.
노령의 여인은 일곱 군데나 칼에 찔린 흔적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하지만 현장의 모습은 왠지 끔찍하다고 표현하기에는 어려웠다. 그저 자신의 집 방안에서 혼자 숨을 거둔 피해자의 모습이 무척 쓸쓸하게 느껴졌던 기억이다. 아무런 침입 흔적도 없었고 물건을 훔친 흔적도 없었다. 원한 관계가 있는 지인의 범행일까. 하지만 눈으로 보기에도 칼에 찔린 상처가 그리 깊어 보이지 않았다. 선혈이 그렇게 낭자한 것도 아니었다. 평온해 보이기까지 하는 시신의 모습과 수차례 칼에 찔린 흔적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경찰은 피해자의 유족으로 갓 마흔을 넘은 아들이 유일한데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했다. 아들은 조현병을 오래 앓고 있었다고 했다. 그가 범인일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아들이 정신병자인데 어머니에게는 효심이 지극했다고 했다. 어머니도 아들을 끔찍하게 보살폈다고 했다. 어딘가 계속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 것 같다는 불편함이 떠나지 않았다.
다행히 사건은 빠르게 해결되어 간다는 소식이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아들의 소재가 파악됐고 이윽고 범행을 모두 자백했다는 보고도 이어졌다. 하지만 무언가 석연치 않았다. 잔인하기보다는 쓸쓸하게 느껴졌던 사건 현장의 진실은 그저 자백만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곧 피해자 시신의 부검이 있었다. 부검을 마치고 부검의가 다가왔다. 정밀하게 살펴봐야겠지만 피해자가 칼에 찔리기 전에 이미 사망했을 수 있다고 말해왔다. 적어도 이 사건이 아니었더라도 오래 생존하기는 어려웠을 건강상태라고 했다.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효심이 지극했다는 아들은 곧 숨을 거두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노모에게 굳이 칼을 들었다. 정신병이 있는 아들을 평생 끔찍하게 보살펴 온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에게 다가오는 아들의 모습을 보았을까. 그들이 함께한 세월과 그 마지막에 느꼈을 감정들은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다. 긴장감으로 시작되었던 살인사건은 점점 슬픈 가족의 이야기로 바뀌어 갔다.
사람을 죽인 사람의 눈은 어떨까. 자기 어머니를 죽인 사람의 눈은 어떨까. 사람의 행동과 눈을 보고 진실을 알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도 있었던 초임 검사 시절이다. 하지만 구속된 피의자를 처음 대면했을 때, 너무도 선량하고 맑은 그의 눈빛을 마주했을 때, 많은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마치 어린아이 같은 눈으로 바라보며 담담하게 그날의 일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도저히 살인자의 모습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몇 년 전부터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했다. 집을 떠나 멀리 여행을 가야 한다고.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홀로 두고 떠날 수가 없었다. 그럴수록 목소리는 크고 거칠어져 갔고 마침내 어머니를 죽여야 한다는 목소리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자기도 모르게 칼을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어머니를 찔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조사를 마치고 나서 그가 말했다. "저 사형시켜 주시면 안 돼요?" 그 맑은 눈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바라보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그는 진심으로 사형을 바라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고통받았고 앞으로도 살아있는 내내 고통받을 것이 분명했다.
국과수에서는 피해자의 사인을 결국 살인으로 결론지어 감정서를 보냈다. 결국, 칼에 찔린 것이 원인이 되어 심장마비로 이어졌다는 결론이었던 것 같다. 차라리 사실이 아니었으면 싶었다. 차라리 고인이 먼저 눈을 감았더라면 아들이 느낄 고통도 덜했을 텐데.
수사기록을 보며 얕은 피해자의 상처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그는 어머니를 찌르라는 목소리에 맞서서 끝까지 싸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사건의 결론은 정해졌다. 존속살인. 그에게 정해진 죄명이었다. 밤을 지새우도록 구형란을 채우지 못했던 기억이 선하다.
/신기용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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