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랑올랑 새책] 인생을 리셋할 수 있다면

  • 문화
  • 문화/출판

[올랑올랑 새책] 인생을 리셋할 수 있다면

블루밍
'나'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대가없는 일

  • 승인 2021-11-01 14:12
  • 수정 2021-11-03 16:45
  • 오희룡 기자오희룡 기자
블루밍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갈수 있다면 가장 찬란했던 젊은 시절을 선택해야 할까, 아니면 되돌릴수 있는 최악의 순간을 선택해야 할까.

미화된 과거의 시간만으로는 현실의 버거운 삶을 이기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가거나, 어느순간 눈떠보니 거짓말처럼 스무살의 나의 모습이 됐다는 타임 슬랩의 상상은 수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매력적인 소재로 사용될 만큼 간절한 바람이기도 하다. 생존을 위한 무한 경쟁 속에서 해법은 이 매력적인 상상 뿐일까.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상을 대하는 법을 그려낸 책들이 나란히 출간됐다.

'블루밍(정여울 지음, 민음사 펴냄, 272쪽)'이 ' 어린시절을 찬란하게 만들어준 명작소설과 동화를 작가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책이라면 '나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비장애형제 자조모임 '나는' 글, 한울림스페셜, 288쪽)는 언제나 괜찮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았던 장애인을 형제자매로 둔 비장애형제들의 이야기다. '대가없는 일(김혜지 지음, 민음사펴냄, 276쪽)은 삶에서 뒤쳐지고 휘청이는 이들을 그린다.

따옴표1
개개인은 나약하고 보잘것 없지만 위기에 처했을때 서로를 필사적으로 구하려는 마음, '우리가 함께 했기에 지금까지 무사히 잘 해낼수 있었어'라는 믿음이 그들을 구원한다.-'더나은 나를 이끌어 내는 타인의 존재 '오즈의 마법사' 중에서



▲#소설 #동화 #나다운 삶=만약 다시 열일곱 살이 된다면 우리는 자신에게 어떤 말을 건넬까? 이번에는 열심히 공부하라고, 아니면 못다한 효도를 해야 한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지금까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보자고 해야 할까. '블루밍'은 정여울 작가가 열일곱 살의 시간을 살고 있는,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 온 모두에게 보내는 따뜻한 인문학 편지다.

'빨간 머리 앤', '데미안', '인어공주', '작은 아씨들', '모모' 등 꼭 다시 읽어야야만 하는 책 25권을 선정해 많은 이들의 어린 시절을 설렘으로 빛내 줬던, 밤새 잠 못 이루게 했던 주인공들의 성장담을 이야기한다. 상상력의 세게를 심리학과 철학, 문학으로 종횡무진하는 그만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성장의 비밀, 바로 나 자신으로서 행복해지는 나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가 이들 동화를 소개한 이유는 타인의 삶을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 자신으로서 온전해 질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작가는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어른이 된다"며 책읽기와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책은 총 3부로 나눠져 있다. 1부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제제, '어린왕자'를 통해 이미 문제아로 낙인 찍힌 아이가 타인과의 우정을 통해 '더 나은 존재'가 돼 가는 지를 말한다. 2부는 '미녀와 야수', '죄와벌'을 통해 이전과는 달라진 변화의 이야기를 담았다. 3부는 아픔과 후회를 겪으며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따옴표2
친구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때마저도 태은은 장애인 동생과 가족 이야기를 했다. 비장애형제라는 정체성에 몰두한 나머지 가족 안에서도 동생의 진로와 교육에 깊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어머니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하고 참견을 하면서 태은과 어머니는 점점 밀착되어갔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비장애형제라는 것 말고 진짜 '나'는 어떤 사람이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래서한동안 사람들을 만나면 최대한 동생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해 봤어. 그랬더니 할 얘기가 없더라고. 비장애형제가 아닌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던 거야."

나 자신의 가치가 다른 존재에게 달려있다면 그 삶은 과연 나의 것일까? 태은은 있는 그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장애인 동생의 착한 언니가 되는 것만이 유일한 존재 가치라고 여겼던 어린 시절의 자신이, 사랑받으려고 끊임없이 주변의 눈치를 살피고 가족의 요구에 맞추려고 노력했던 자신이 처음으로 불쌍하게 느껴졌다. -'태은 나에게로 가는 길' 중에서

▲#사실은 #괜찮지 않은 #주변인=우리사회에서 비장애 형제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별로 없었다. 장애 가족의 이야기를 책이나 영화를 통해 접하기는 해도, 대부분이 장애인 당사자나 그 부모가 겪는 어려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쩌다 등장하는 비장애인 형제는 존재감이 없거나, 장애인 형제에 대한 부모의 관심을 당연한 희생을 강요당한다. 아니면 장애형제의 존재감을 무작정 부정하는 '반항아'다.

'나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는 발달장애 형제를 둔 비장애형제 여섯명이 쓴 소설형식의 자전적 에세이다. 소설속 비장애인 형제들은 '부모 말씀을 잘 듣는 착한 아이'이거나 '부모대신 형제의 병을 받아들이고 삶에 적응'하고, '엄마가 없을때는 엄마'가 될 정도로 좋은 누나이자, 동생이다. 책은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가족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과정에서 비 장애형제가 정체성을 형성하는 시기에 어떤 어려움과 혼란을 겪는지를 잘 드러낸다 가족안에서의 희생을 강요당하고, 고립된채 살아온 비장애인 형제들의 죄의식과 외로움, 혼란과 상처 등을 통해 우리 사회 가정의 역할과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알수 있다.

따옴표3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의 어려움에 비해 멀어지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를 생각하면 종종 아득해진다. 또 이미 멀어져 버린 관계라 할지라도 기어이 기억의 조각들을 남기고야 만다는 것도. 의외로 기억의 밑바닥에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건 아주 사소한 장면들이다. 신문지를 깔고 앉아 언니가 내 앞머리를 잘라주던 밤에 부엌가위에서 나던 사각소리, 굴소스를 듬뿍 넣고 언니가 해 준 볶음밥을 먹던 오후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던 노래, 내가 심한 몸살을 앓던 새벽에 물수건을 갈아주며 이마를 짚어보던 언니의 손길같은 것들.-'대가없는 일' 중에서

▲#신음과 #울음사이서 #침묵하기='대가 없는 일'은 '보통', '무난', '정상'과의 범주가 다른 사람들의 뒤처지는 걸음에 대해 얘기한다. 무엇보다 인플루엔서, 유튜브 등 지금 우리의 현실을 배경으로 결국은 뒤쳐지고야 만, 배신하거나 배신당하고만 우리의 내면을 엿보듯 그려낸다.

작가가 주목하는 인물은 '정상속도' 혹은 '정상인 상태'가 되고 싶은 이들과 남들이 말하는 정상보다는 '오롯한 나' 사이에서 휘청이는 인물들이다. 저마다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는 인물들의 울음이 터지는 순간, 혹은 침묵의 무게를 담담히 그려낸다. 무작정 침묵만 그려내는 것은 아니다.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않은채 자신을 발설하고, 상대를 공격하고 웅크리는 속내를 자세히 그린다. 그래서 공격한 자와 공격당한 자를 구분할수 없는, 배신과 고마움 사이의 기묘한 감정이 있는 것도 그 이유다. 각자의 속도대로 달리다 고꾸라진 이의 무릎에 묻은 흙을 털어내 주듯 살갑진 않지만, 따뜻한 작가의 시선을 느낄수 있다. /오희룡 기자 huily@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고교 당일 급식파업에 학생 단축수업 '파장'
  2. 대전 오월드서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작업자 추락해 사망
  3. 열악했던 대전 여성노숙인 쉼터…지원 손길로 '확 달라졌다'
  4. "뿌리부터 첨단산업까지… 지역과 함께 혁신·성장하는 대학"
  5. 대전 중구 교육부 평생학습도시 신규 선정 '중구가 대학, 온마을이 캠퍼스'
  1. 대전교사들 "학교 CCTV 의무화, 사건 예방에 도움 안돼" 의무화 입법에 반발
  2. 계룡산성 道지정문화재 등록 5년째 '보류'…성벽과 기와 무너지고 흩어져
  3. 대전 금고동 주민들 "매립장·하수처리 공사장 먼지에 농사 망칠판" 호소
  4.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5.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헤드라인 뉴스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탄핵정국 속 두 쪽으로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4·2 재보궐선거 본 투표 당일인 2일 시의원을 뽑는 대전 유성구 주민에게선 사뭇 비장함이 느껴졌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통해 주권재민(主權在民) 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발현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저마다 투표소로 향한 것이다. 오전 10시에 방문한 유성구제2선거구의 온천2동 제6투표소 대전어은중학교는 다소 한산한 풍경이었다. 투표 시작 후 4시간이 흘렀지만 누적 투표수는 고작 200표 남짓에 불과했다. 낮은 투표율을 짐..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국내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이 약 9500여 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40대 차주의 평균 대출 잔액은 1억 1073만 원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553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2012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1인당 대출 잔액은 지난 2023년 2분기 말(9332만 원) 이후 6분기 연속 증가했다. 1년 전인 2..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숨겨진 명곡이 재조명 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 한산한 투표소 한산한 투표소

  •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