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에 '영월문화원 설립 20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성우향 명창의 단가 '영월팔경' LP음반 앞·뒷표지. <국악음반박물관·영월문화원 제공> |
무엇보다 성 명창의 폭넓은 소리 활동 가운데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가 밝혀졌다는 점에서 매우 소중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성 명창은 판소리 동편제·서편제뿐 아니라 중고제와 관련해서도 매우 중요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스승은 정응민 명창이다. 정응민 명창은 현재 가장 왕성하게 전승되고 있는 판소리 '보성소리'의 시조이자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노재명 국악학자의 저서, '동편제 심청가 흔적을 찾아서(2021년)'에 따르면 정응민 명창의 첫 스승은 중고제 거장 이동백 명창이다. 전라도 소리인 '보성소리' 곳곳에서 동·서편제뿐 아니라 중고제 창법도 강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정응민 명창의 수제자인 성우향 명창은 중고제 측면에서 볼 때 주목되는 인물이다.
7인치 싱글로 제작된 LP음반 한 장이 최근 경매시장을 통해 나왔다. 국악음반박물관 노재명 관장이 이 음반을 낙찰 받았다. 이 LP음반의 경우 표지 뒷면은 소실된 채 발견됐다.
음반 알판과 표지 앞면으로만 본 이 LP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본보는 지난달 28일 서울에 거주 중인 노 관장을 만나 음반 등을 직접 확인했다.
먼저 음반의 제목은 '향토노래모음'이다. 이 LP음반은 1976년 9월 18일 강원도 영월군이 '영월문화원 설립 20주년 기념'으로 발행하고 대한음반이 제작했다.
국악음반박물관 노재명 관장(왼쪽)이 지난달 28일 서울시 성동구의 한 찻집에서 성우향 명창의 1976년 단가 '영월팔경' LP음반에 대해 본지 손도언 기자에게 설명하는 모습. 제천=손도언 기자 k-55son@ |
LP음반의 구성은 이렇다. LP음반 앞면(1면)은 합창 '영월의 노래'(한상일 등 노래)와 시조 '자규시'(김월하 시창), 뒷면(2면)은 대중가요 '두견새 우는 청령포'(심수경 노래)와 단가 '영월팔경'(성우향 가야금병창) 녹음이 담겨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제목은 '영월팔경'이다. 노 관장의 말을 종합하면 성 명창이 '영월팔경'을 단가로 불렀다. 단가는 5분여 짜리인데, 특이한 점은 판소리 고수가 아닌 가야금과 장고 반주로 돼 있다는 점이다.
노 학자는 이 음반의 음성과 표지 앞면 기록만으로 성 명창의 육성을 1차로 밝혔다. 음반 알판 표면과 표지 앞면에는 취입자 이름이 적혀있지 않았고, 표지 뒷면이 없는 상태에서 녹음만 듣고 이를 고증해낸 것이다.
노 학자의 1차 분석 결과는 놀라웠다. 우선 이 단가의 반주를 장고와 가야금이 담당했다는 것이 특이하다. 무엇보다 성 명창이 기존 단가(강상풍월·진국명산 등)를 부르지 않고 새로 작창한 소리를 녹음했다는 점도 이색적이다.
그렇다면 이 단가의 작사는 누가 했을까. 노 학자가 풀어야할 과제였다. 이 LP음반의 표지 뒷면만 있다면 이러한 미스터리는 풀릴 것이다. 노 관장은 이 LP음반의 표지 뒷면 찾기에 나섰다. 추적 결과 강원도 영월군 영월문화원이 이 LP음반의 뒷 표지까지 포함,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었다. 이 희귀음반은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국악음반박물관(표지의 경우 앞면만)과 영월문화원(표지의 경우 앞·뒷면 모두)에만 소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성 명창의 단가 '영월팔경'의 미스터리는 노 관장의 2차 분석에 의해 풀리기 시작했고, 궁금증을 불러왔던 퍼즐도 완성됐다. 노 관장은 1차 분석에서 이 단가의 작사가를 당시 영월문화원장이나 지역의 지식인이 맡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했다. 그의 예상은 정확했다. 노 관장은 이 음반의 뒷 표지를 추적해 '영월팔경'의 작사자가 안학모 초대 영월문화원장으로 기록돼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 이 단가에서 황득주 가야금 연주자가 장고로 반주했다는 것도 밝혀냈다 단가는 판소리를 시작하기 전에 목을 풀 목적으로 부르는 짧은 소리다. 단가 '영월팔경'은 "聖王(성왕)이 버리시니~"로 시작되는데, 영월의 여덟 명승지를 유람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성 명창이 한창 전성기 무렵인 44세 때 녹음한 것이다.
판소리 인간문화재 성우향 명창의 가야금 연주 장면. 성우향 명창은 1960년쯤에 성금연 명인에게 가야금산조를 배웠다. <국악음반박물관 제공> |
성 명창이 가야금병창으로 소리한 음반은 그의 소리 인생에서 유일무이하다는 게 '판소리 명창 성우향'(1998년)의 저자인 노재명 관장의 설명이다.
노 관장은 "1차 분석 당시, 성 명창이 단가를 부르고 장고와 가야금 반주자들이 함께 녹음한 것으로 봤다"며 "그런데 음반 뒷 표지를 추가로 추적해 보니, 성 명창이 직접 가야금까지 반주하며 가야금병창으로 '영월팔경'을 불렀다"고 말했다.
노 관장은 이어 "성 명창은 생전에 '진국명산'이나 '강상풍월' 등 스승에게서 배운 단가를 즐겨 불렀다"며 "'영월팔경'의 경우 성 명창 본인이 작창을 해서 부른 것으로 보이는데 만일 그렇다면 이 '영월팔경'은 성 명창이 작곡해서 남긴 유일한 단가 녹음"이라고 강조했다.
남해웅 국립창극단 단원(성우향 명창 제자)은 "성우향 선생님이 산 공부 시절, 가야금을 타는 것을 종종 봐 왔다"며 "그런데, 가야금병창으로 소리했다는 것은 처음 들었고, 또 음반으로 기록을 남겼다는 것 역시, 매우 놀랍다"고 말했다.
조동언 판소리 명창(성우향 명창 제자)은 "성우향 선생님과 관련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 왔는데, 이런 이야기(성우향 가야금병창)는 처음 들어봤다"며 "매우 가치있는 음반"이라고 강조했다.
영월문화원 나명길 사무국장은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 초상화도 인지도가 가장 높았던 운보 김기창 화백이 그렸다"며 "음반에 담긴 단가 '영월팔경' 역시 당시 최고의 명창에게 위촉해 녹음했으리라 생각된다"고 말했다.
성 명창은 1972년 심청가, 1974년 춘향가, 1976년 심청가, 1977년 흥보가를 완창했다. 이때가 그의 최고 전성기였고 이러한 완창 활동은 당시 주요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성 명창은 1976년 '영월팔경'을 취입하게 된 것이다.
성 명창은 전남 화순 출신이다. 그는 당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던 명창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2014년 5월 1일 새벽 3시쯤 노환으로 별세했다.
큰 별이 지고 7년이 흐른 현재. 그의 거대한 판소리 업적이 안타깝게도 조금씩 잊혀지고 있지만 그의 '판소리 성음과 공력 가치' 만큼은 판소리계에서 여전히 높게 평가되고 있다. /제천=손도언 기자 k-55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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