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혁 대전도시공사 사장 |
넷플릭스는 북한과 시리아 등 일부 폐쇄국가를 제외한 전 세계에서 볼 수 있고 시청률 순위를 집계하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오징어 게임'이 1위를 차지했다. 세계에서 가장 핫(hot)한 장소라는 뉴욕 타임스퀘어에 초록색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이 단체로 딱지치기를 하고 미국의 일부 학교에서는 오징어 게임을 패러디한 복장에 대해 등교 금지령을 내릴 정도다. 외국영화를 극단적으로 배타하는 인도에서도 이 드라마가 결국 흥행 1위에 올랐다고 한다. 제한적이지만 모바일 기기가 보급된 것으로 알려진 평양의 어느 골목 귀퉁이에서 어린아이들이 달고나를 나누어 먹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징어 게임과 관련해서 우리가 잘 모르는 게 있다. 드라마 속 출연자들이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게임 장소로 이동하던 미(迷路) 같은 계단, 허공에서 하던 줄다리기, 골목길의 구슬치기, 달고나 대결 등 중요한 장면들이 대전에서 촬영됐다는 사실이다. 유성구 도룡동에 있는 문체부 산하의 스튜디오 큐브가 이 장면들의 촬영장소다.
지난달 21일에는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한 한국형 3단 액체로켓 누리호가 발사됐다. 탑재한 위성 모사체(模寫體)를 예정된 궤도에 안착시키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우리기술로 발사체를 고도 700km까지 쏘아 올림으로써 세계 9번째 우주 발사체 기술보유국이 됐다. 보도를 보니 이번 발사를 주도한 항공우주연구원의 연구진들이 대전과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에서 발사 준비를 했는데 과정은 대부분 대전에서 이루어졌고 연구인력도 대다수가 대전에 상주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누리호 발사 직후 허태정 시장도 누리호를 'made in 대전'이라고 정의하면서 "과학수도 대전에서 개발된 누리호가 우주강국 진입을 위한 중요한 도약을 이루어 냈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대전에 사는 사람들은 무심하게 지나치고 있지만, 대전에서 생산된 문화콘텐츠가 세계적인 흥행을 이끌었고 또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중대한 성과를 창출한 것이다. 대전은 어느 대도시에 뒤지지 않는 인프라를 갖추고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지만 정작 우리는 대전의 경쟁력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이를 하나로 묶어내는 이른바 융복합(融複合)에도 취약한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에는 올림픽공원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는 초대형 인형을 만들어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 중이고 인터넷 오픈마켓에는 다양한 오징어 게임 관련 상품이 출시되고 있는데 중심촬영지인 대전은 조용하기만 하다.
누리호도 비슷하다. TV로 발사장면을 지켜본 국민들이 외나로도라는 섬은 기억해도 중요한 과정이 대전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지 의문이다.
오징어 게임 흥행으로 넷플릭스 본사가 막대한 이익을 챙겼지만 한국의 감독이나 출연진은 수익이 미미하다는 소식이다. 대전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인프라를 갖추고 콘텐츠를 생산하는데 만족할 것이 아니라 이를 활용해서 대전시의 브랜드 가치와 경쟁력을 높이고 시민 모두가 수혜자가 될 수 있는 보다 정교한 아이디어와 실천력이 뒤따라야 한다. 물론 나를 포함한 공직자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 /김재혁 대전도시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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