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 4대 기서에는 <삼국지연의>와 <서유기>, <금병매>가 포함된다. 수호지는 수령인 송강(宋江)을 중심으로 108명의 유협(遊俠)들이 양산박(梁山泊)을 거점으로 조정의 부패를 통탄하고 관료의 비행에 반항하여 민중의 갈채를 받는 이야기이다.
무송(武松), 노지심(魯智深), 이규(李逵) 등 신분이 낮은 계층과 임충(林?), 양지(楊志)처럼 지주 출신자도 가담하여 탄탄한 팀워크를 이루고 있다. 초근목피(草根木皮)의 가련한 민중의 삶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가렴주구(苛斂誅求)에만 몰두하는 썩은 관료들을 단죄하는 게 그들의 설립 목적이다.
따라서 수호지에 등장하는 활발하고 용감한 사나이들의 이야기는 오늘날까지 인기를 모으는 것이다. 물론 당시 관(官)에서는 양산박의 108 호걸들을 도적과 반란 수괴라며 소탕령을 내렸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어서일까.
지금 우리나라는 일부의 도적들이 관, 즉 정부와 국민들까지 싸잡아 능멸하면서까지 말도 안 되는 천문학적 치부 행각을 벌였다. 그 주인공들은 다름 아닌 이른바 '대장동 도적들'이다. 당연히 지탄과 처벌의 비난 대상이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개발 당시 483명의 땅 주인들은 눈물을 머금고 반값에 땅을 내주어야 했다. 그 땅에 지은 아파트를 6000명은 비싼 값에 샀다. 땅 짚고 헤엄치기의 전형적 치부 행각이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중간에서 작당한 거간꾼을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이익을 거둔 자들의 후안무치 행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어둠의 공모자들'은 무려 6,000억 원이라는 사익을 편취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말이 좋아서 6000억 원이지 이 돈이면 대체 못 할 게 뭐가 있을까 싶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는 속담이 있다. 지지리 못난 사람일수록 같이 있는 동료를 망신시킨다는 말이다. 대장동 화천대유 사건에서 고작(?) 8721만 원을 투자해 무려 1007억 원이나 배당받은 것으로 알려진 남 모 변호사는 여론이 악화하자 미국으로 출국했다.
그러다 사건이 연일 보도되고 압박이 가해지자 마지못해 귀국하여 성실한 대부분의 변호사들에게 애먼 수치심을 안겼다.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이자 화천대유의 대주주 김 모 씨 또한 전직 기자 출신으로 '기레기'란 오명으로 불리며 동료 기자들에게 씻기 힘든 모멸감을 줬다.
더 가증스러운 것은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취재기자들 앞에서 농담까지 던지는 등 자못 당당하기까지 하다는 모습이다. 이에 누가 보기에도 흐물흐물하기 짝이 없는 검찰의 대장동 수사팀은 국민들로 하여금 "대장동 도적들, 도대체 못 잡나? 안 잡나!"라는 의구심을 팽배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유토피아]의 저자 토머스 모어는 영국의 고위 공직을 두루 지냈다. 그는 청렴한 공직자로서 '뇌물'을 절대 받지 않았다. 한 번은 어떤 부인이 병상에 있는 남편의 송사에서 올바른 판결을 해줘 고맙다는 뜻으로 모어에게 도금한 컵을 선물로 가져왔다.
부담스러운 선물에 모어는 기지를 발휘해서 그 컵에 포도주를 가득 부어 선물한 사람의 건강을 위해 건배를 한 후 컵을 돌려주었다. 전직 고관대작들까지 두루 망라된 화천대유 사건에서 새삼 토머스 모어의 청렴관(淸廉觀)을 칭송하지 않을 수 없다. 양산박 유협들까지 공분할 '대장동 도적들', 즉 어둠의 공모자들을 반드시 엄벌하라! 국민의 명령이다.
홍경석 / 작가·'초경서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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