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산행의 맛 가야산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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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공론] 산행의 맛 가야산을 가다

덕천 염재균 / 수필가

  • 승인 2021-10-30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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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의가을 / 합천군 제공
깊어만 가는 가을도 어느덧 절기상으로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을 지난지도 며칠이나 지났다.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한낮에 비해 10℃이상 차이가 나는 급격한 변화에 건강관리에 좀 더 신경을 써야만 하는 시기인 것 같다.

가을의 끝자락의 길목에서 화려함을 뽐내는 단풍소식이 북쪽으로부터 서서히 남쪽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인간인 우리들의 입장에서 보면 좋아할 일이지만 나무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추운 겨울에 살아남기 위해 고통을 견뎌야하는 시기인 것이다.

울긋불긋 아름다움으로 물들어가는 단풍과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는 만물상 등을 보기 위해 10월 26일 경남 합천군 가야면, 경북 성주군 가천면과 수륜면에 걸쳐 있는 가야산을 산행하기로 하고 00 산악회에 신청하여 평소 친분이 있는 네 분과 같이 가기로 했다.

설레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오전 6시경에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한 후 배낭을 메고 출발지인 (구)시민회관으로 가기 위해 밖을 나서니 찬바람이 심술궂게 다가와 옷 속으로 파고든다. 10분 정도 정류장에서 기다린 끝에 608번 버스를 타고 병무청 앞에서 내려 천천히 걸었다. 마트 앞에 도착하니 같이 갈 일행은 보이질 않고 젊은 청년 둘이 아침식사로 편의점 음식을 먹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춥지도 않은지 감기라도 걸리지 않을까 걱정스럽게 보이는 것은 부모의 입장에서 바라본 심정인 것 같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버드내아파트에 사시는 00분이 오셔서 반갑게 주먹인사를 하며 추워진 날씨를 걱정하고 있었다. 오전7시 30분이 되자 타고 갈 00산악회 관광버스가 우리들 앞에 나타나 인원을 확인한 후 대전ic방향으로 가면서 중간지점에서 일행들을 태우고 나니 마지막 승차하는 원두막 지점에서는 36인승 자리가 모처럼만에 만석이라고 한다. 관광버스는 경부고속도로 진입하여 남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산행을 주관하는 00님의 인사말씀과 산행할 3개 코스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하산할 때까지 안전하게 무리하지 않도록 할 것을 당부했다. 옥천을 지나면서 안개가 자욱이 끼어 있어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오전9시경이 되어서야 안개는 사라지면서 가을들녘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도 수확을 하지 못한 들녘의 벼들이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고, 주렁주렁 매달린 붉은 사과가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차는 계속해서 김천을 지나 성주 방면으로 달리는 데 들녘에는 비닐하우스 물결을 이루고 있어 눈이 내린 것처럼 세상이 하얗게 보인다. 성주 참외를 홍보하는 커다란 입간판도 눈에 띄어 나도 모르게 입안에는 침이 고이고 있었다.

성주IC(나들목)를 빠져나와 산행을 시작하려는 목적지인 백운동지구 주차장에 도착했다.

산행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산행을 시작하고, 편안한 산행을 하려는 사람들은 다른 코스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가야산 국립공원 2코스인 이곳은 산세가 험하고 등산로가 계단으로 이루어져 소요시간이 5시간 이상 걸린다고해 출발 전부터 약간 긴장이 된다. 산행할 코스는 이곳 백운을 시작으로 만물상-서성재-가야산-해인사-주차장으로 이어지는 코스로 기온이 서서히 오르는 오전10시경에 산행을 시작했다. 시작하자마자 돌계단으로 이어지는 비탈길이다.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배낭에 집어넣고 물을 가끔씩 마셔가며 천천히 걸었다. 정년퇴직을 한 이후에는 무기력감에서 벗어나고 우울증에 걸릴 것을 염려하여 산과 물을 좋아하는 '요산요수(樂山樂水)에 빠진 것처럼 산수의 경치를 좋아해 기회만 있으면 산행을 하려고 하며, 이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

땀을 흘리고 가쁘게 숨을 내쉬며 오르는 등산길 주변의 산에는 울긋불긋 물들기 시작한 숲속의 나무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듯 가을잔치를 벌이고 있는 듯 보였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발걸음이 조금씩 느려지고 있다. 이젠 필자도 나이는 못 속이는 것아 흐르는 세월을 막을 수 없고 흐름에 따라가야 함을 알 수 있는 체험의 장이었다. 등산길에는 뾰족한 돌들이 많고 계단의 폭이 높은 곳이 많아 다리에 많은 힘을 주게 되어 중간에 수시로 쉬어야만 했다. 천천히 산행하라는 슬로우 탐방 구간 표지판이 눈에 띈다.

'당신의 심장은 소중합니다.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세요'라는 글귀가 피부에 와 닿는다. 표지판의 글귀대로 잠시 쉬면서 올라올 때 보지 못했던 비단결처럼 펼쳐진 산들을 눈에 담으며 시원한 물 한 잔을 마시며 힘을 내어 본다. 다시 힘을 내서 그런지 기암괴석이 즐비하게 늘어선 암석지대인 만물상을 지나며 피곤함도 잠시 잊고 사진도 찍고 감상하면서 나도 그곳에 빠져 만물상의 일원이 된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만물상 중에는 부처님의 자애로운 모습을 지닌 모습도 보이고, 물개가 먹이 사냥을 하려고 노려보는 것 같은 바위도 있고, 떨어질듯 위태롭게 서있는 바위도 눈에 들어온다. 산등성이를 오르내리며 힘들게 만물상 지대를 지나니 또 다른 코스인 서성재로 2.4km를 올라가야 한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산행으로 지친 땀을 닦아가며 발걸음을 하다 보니 서성재(西城岾)에 도착했다. 시간은 벌써 12시 30분경으로 버드내아파트에 사시는 00분과 둘이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옆에는 다른 산행객들이 점심을 먹고 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정성들여 싸준 도시락을 맛있게 먹었는데, 깜박하고 가져온 국을 먹지 않은 것을 깨달은 것은 산행 후 차안에서였다.

서성재는 경북 성주군 수륜면과 경남 합천군 가야면을 이어주는 고개로 식사를 마치고 출발하자마자 가파른 경사 길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느낌이었다. 지대가 높아지고 있어서인지 복조리를 만들 때 쓰이는 조릿대가 무리를 이루며 자생하고 있었다. 길옆으로 난 조릿대를 바라보며 칠불봉(七佛峰)으로 오르는 길은 1.2km로 짧은 거리인거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돌과 철계단으로 이어진 곳이 많아 또 한 번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하여만 했다. 정상 부근에는 괴사목이 오가는 산행객들을 죽어서까지 반겨주고 있었다. 쉼터에서 50m 정도 떨어져 있는 칠불봉(해발1,433m)으로 가서 사진 한 컷을 찍으며 힘들게 올라온 흔적들을 따라 잠시 가야산의 아름다움에 피곤함도 잊어본다.

조선 중기의 문신(文臣)이며 서예가(書藝家)인 양사언(楊士彦, 1517년~1584년)의 시조를 읊어본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이 시조에는 산행을 해보지 않고 산만 높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을 빗대어 하는 말로 해보지도 않고 불평불만 얘기하는 사람들이 새겨들어야 할 교훈이 들어있는 것이다.

발걸음은 다시 200m 정도 거리에 있는 가야산의 최고봉인 상왕봉으로 향했다. 상왕봉으로 가는 길은 잡석이라 별로 볼 것이 없어 보여 100m 아래의 이정표에서 바라다보는 것으로 만족해하며 해인사를 향해 하산하기 시작했다. 하산하는 길도 쉽지가 않았다. 수많은 돌계단과 조릿대가 숲을 이루는 산길을 내려오다 보니 커다란 바위로 이루어진 봉천대가 눈에 들어온다. 바위가 너무 커 사진 한 장에 다 담을 수 없어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내려가다 보니 저 멀리 원숭이 한 마리가 앉아서 무언가를 응시하는 모습의 바위가 보인다. 이곳은 낙석지대라 조심스럽게 지나가야 했다. 낙석지대를 조금 지나니 비탈진 곳 50m 지점에 석조여래입상이 있어 호기심에 찾아가 보았다. 크기는 210cm로 작아보였지만, 두 손을 모아 공손하게 절을 한 다음 발길을 재촉했다.

해인사로 향하는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구도자의 길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오후 3시경이 되어서야 절이 있는 해인사에 도착 했다. 잠시 동안 해인사 절내를 구경한 다음 노랗게 핀 국화를 전송받으며 1.2km의 오솔길을 걸으며 관광버스가 서 있는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이미 도착한 사람들이 지칠 대로 지친 몸의 피로를 풀기 위해 쉬고 있었다. 필자와 같이 산행한 00님과 함께 곡주와 컵라면을 먹으면서 6시간의 산행을 마무리 했다.

산행을 할 때는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지나고 보면 그것도 하나의 추억이 될 수 있음을 알게 한 깊어가는 가을의 길목에서 산이 거기에 있기에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일렁거린다.

덕천 염재균 / 수필가

염재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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