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실금 간 항아리 인생으로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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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실금 간 항아리 인생으로 살게 하소서

남상선 / 수필가, 전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21-10-29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남상선
남상선 수필가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카톡자료가 왔다. '실금이 간 항아리'였다.

자료를 읽다 보니 80년대 학부형 생각이 났다. 부모가 완벽하고 머리 좋은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부부 모두 명문대 출신에 사회적 지위도 상당했다. 어찌된 사람들인지 매사에 최고만을 추구하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자신들의 학창 시절은 늘 1등만 하고 살은 수재였는 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뭐든지 최고요, 1등만을 추구하는 완벽주의자였다. 그러다 보니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기도 했지만 2등이나 3등으로 밀려나는 날이면 자녀 들을 숨쉬기 어려울 정도 다그치고 몰아붙여서 정신적으로 멘붕이 될 정도였다.

그 집 귀공자들이 1, 2학년은 그런 대로 마치고 3학년이 되었다. 참고 견디는 것도 한 계 선에 달했던지 귀공자들은 부모 등쌀을 이기지 못하고 중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드디어 상위권을 달리던 성적도 급강하 낙하선을 타고 있었다. 완벽주의자 부모의 입김이 얼마나 숨통을 죄게 했던지 남매는 수능 보기 1개월 전에 가출하고 말았다.



그들보다 공부를 못했던 애들은 모두 진학하여 낭만적인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완벽주위자 자녀보다 많이 부족한 학생들이었지만 어찌된 상황인지 대학을 간 뒤부터는 1 등만을 하던 수재의 학부모가 부러워하는 상승가도만 달리고 있었다.

이것이 완벽주의자가 추구한 말로였다. 어쩌면 다음의 카톡자료가 그런 것을 빗대어 말해 주는지도 모르겠다.

한 아낙이 물지게를 지고 먼 길을 오가며 물을 날랐다. 양쪽 어깨에 항아리가 하나씩 걸 쳐져 있었는데 왼쪽 항아리는 살짝 실금이 간 항아리였다.

그래서 물을 가득 채워서 출발했지만, 집에 오면 왼쪽 항아리의 물은 항상 반쯤 비어 있었다. 왼쪽 항아리는 금 사이로 물이 흘러내렸고, 오른쪽 항아리는 물 그대로였다.

왼쪽 항아리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왼쪽 항아리가 아낙에게 말했다.

"주인님, 저 때문에 항상 일을 두 번씩 하는 것 같아서 죄송해요. 금이 가서 물이 새는 저 같은 항아리는 버리고 새것으로 쓰시지요."

아낙이 빙그레 웃으면서 금이 간 항아리에게 말했다.

"나도 네가 금이 간 항아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괜찮아. 우리가 지나온 길의 양쪽을 보거라. 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오른쪽 길은 아무 생명도 자라지 못하는 황무지가 되었지만, 네가 물을 뿌려 준 왼쪽 길에는 아름다운 꽃과 풀과 생명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잖니."

"너는 금이 갔지만, 너로 인해서 많은 생명이 자라나고, 나는 그 생명을 보면서 행복 하단다. 너는 지금 그대로 네 역할을 아주 잘하고 있는 것이란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흠이 있는 것보다는 완벽한 것을 좋아한다.

허나 세상살이는 완벽함보다는 조금 모자라고 흠이 있게 사는 것이 좋다.

깨지지 않은 항아리가 완전하지만 그 항아리가 지나간 자리는 물 한 방울 흘린 게 없어 온갖 식물들을 말라 죽게 하고 있다. 이렇듯 사람도 잘나고 똑똑하여 저밖에 모르는 사람이 돼서는 안 된다. 자신이 잘 나고 많이 배워 부족함이 없는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라도 물 한 방울 새지 않는 항아리 인생을 산다면 주변 사람들을 어렵게 한다.

이렇게 본다면 완벽한 사람으로 메마르게 살아 피해를 주는 것보다는 조금 부족하게 사는 것이 낫다. 새는 항아리 인생으로 살아 우리 모두가 공생할 수 있는 삶이 낫다.

메마른 대지에 항아리의 실금이 촉촉이 물을 뿜어내어 이름 없는 풀도, 꽃도, 잡초도, 살리듯 우리는 부족한 허점의 틈으로 사랑을 뿜어내며 살아야 한다. 공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의 인격의 실금으로 나 있는 작은 틈으로 사랑을 뿜어내어, 사랑이 필요한 이에겐 사랑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겐 도움을, 주어야 한다.

실금이 간 항아리가 새어서 주변에 있는 식물을 살리듯, 우리도 조금은 부족하지만 베푸는 넉넉한 마음으로 사람냄새 풍기며 살아야 한다.

실금이 간 항아리가 부족함으로 모자람으로 만물을 살리듯 우리도 또 다른 부처님, 하느님이 되어 함께 숨 쉬고 노래하는 공생의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 주변엔 너무 똑똑하고 잘나서 세상을 황무지로 만드는 사람들이 많다.

이기주의로 자기 틀에 가두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완벽의 꼬리가 숨도 못 쉬게 하는 거라면 아니, 피 말라 죽게 하는 것이라 한다면 좀 모자라는 부족함으로 공생하며 사는 게 어떻겠는가?

완벽해서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게 하는 거라면 금이 간, 부족함으로 우주 만물을 살리는 게 어떻겠는가?

나도 완벽한 사람은 아닌지 청진기를 대 보아야겠다.

완벽한 아빠로, 엄마로, 남편으로, 아내로,

아니, 숨 막히게, 짜증나게 하는 오너로, 그 알량한 상사로,

주변 사람의 숨통을 막고 사는,

우매한 자는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로다.



우리 모두가 존엄한 존재라면

엄마, 아빠, 돌쇠, 철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 실금 간 항아리 인생으로 살게 하소서,

우주 만물을 촉촉하게 훈훈하게 하는

그런 사랑으로, 자비로, 뭉클한 삶이 되게 하소서.

남상선 / 수필가, 전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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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선<사진 맨왼쪽> 수필가가 지난 20일 대전에서 열린 백천 수필문학상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남상선 수필가가 지난 20일 백천 수필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남 수필가는 이날 시상식에서 수상소감을 통해 "글 쓰는 문인이라면 누구든지 받고 싶어하는 백천 수필문학상을 주신 백천 박찬규 선생님의 유가족과 사모님께 감사를 드린다"며 "오늘 받은 상금은 12월2일 심장 수술을 하는 어려운 이에게 전액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남 수필가는 "베풀어주신 사랑, 은혜에 감사하는 삶과 향이 있는 글로써 보답하겠다. 따뜻한 가슴으로 사는 것으로 보답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남 수필가는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사람사이의 정이 넘치는 수필을 꾸준히 발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제3수필집 '너와 나는 서로의 장갑이 되어'(남상선 지음, 오늘의 문학사 펴냄, 쪽)를 출간됐다. /김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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