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동(극단 헤르메스 연출가) |
사랑을 묻다. 원작은 존경과 연민 사이, 헌신과 외면 사이,
애증과 사랑 사이, 매혹과 혼란 사이에서 '사랑의 감정'의 모순과 욕망을 이야기한다.
'감정의 혼란'은 동성애를 다룬 작품으로 지성적인 대학교수가 자신에 이성의 힘으로 사회의 명예를 지키려 한다. 내면의 감정 속 충동으로 자신을 누르지만 사회 안에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으로 무너져가는 인물의 내면을 보여준다.
"정열은 정신이 그러하듯이, 항상 흐르고는 있지만 영원히 만족될 수 없으며, 완전히 흘러 버릴 수도 없는 그런 것입니다." - '감정의 혼란'중에서
'모르는 여인의 편지'는 연정을 느끼게 된 사람과 공유되지 않은 관계 속에 자신의 사랑에 빠져 집착적이지만 모순적으로 지고지순한 여인의 한 생애를 걸친 사랑의 감정을 보여 준다.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지 않은 채 긴 시간에도 변함없이 한 사람만을 지켜보는 사랑이란 마음의 희생성을 생각하게 해 준다.
"사랑하는 분이여! 나는 결코 그 시간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당신이 잠에 빠졌을 때, 내가 당신의 호흡 소리를 들었을 때, 나 스스로 당신 곁에 있는 것을 느꼈을 때, 나는 어둠 속에서 너무나 행복해서 흐느껴 울기까지 했습니다." - '모르는 여인의 편지' 중에서
'달밤의 뒷골목'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랑이라 믿고 결혼을 하지만 자신의 사랑과 상대의 사랑의 엇갈림 속에서 서로를 받아드리지 못 한다. 사랑이 애증 적으로 변해가는 감정을 통해 사랑의 치열성과 그 끊어내지 못하는 감정이 얼마나 서로를 파멸시키느냐를 보여준다.
"나는 울면서 무릎을 꿇고 그 여자에게 돈을 내바쳤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나는, 나는 그 여자 없이는 살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그러면서도 그 여자를 나락으로 밀쳐 떨어뜨린 것은 다른 사람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습니다. ....... 저는 칼 한 자루를 샀습니다." - '달밤의 뒷골목'중에서
극단 라일락의 5번째 작품으로 자칫 무거 울 수 있는 극 분위기를 전반적으로 무겁지만 중간중간 웃음 포인트가 있게 만들었다. 젊은 관객들도 쉽게 공감하고 느끼게 풀어나갔다. 고전 문학을 현대로 풀어내면서 색다른 무대와 이야기 전개 방식으로 관객과 소통하였다.
정선호 연출은 "우리는 항상 사랑이 뭘까? 생각한다. 많은 사랑 이야기를 담을 순 없지만 슈테판 츠바이크의 사랑에 관한 소설로 만든 공연으로 사랑을 한다는 것에 생각해보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슈테판 츠바이크 작품은 내면의 심리 감정의 변화를 세밀하게 그려냈다. 공연을 보고 잠깐 사랑이 뭘까 하고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건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자의 입장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된다. 깊이 있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무대화한다는 건 그래서 반가운 일이다. 소설을 희곡으로 가지고 오면서 무대화한 작품들은 많다. 누구나 한 번쯤 읽어 본 동화책부터 읽기에 도전했지만, 실패를 맛본 고전 책이라든지 바쁜 현대를 살면서 책 한 권 읽는 여유를 대신해 주며 문학을 배우의 목소리와 몸짓으로 현장에서 본다는 건 연극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쌀쌀한 날씨에 옷깃을 여미며 서울로 향한다. 고전 문학을 6시간의 긴 호흡으로 만든 연극을 보러 간다. 읽기에도 벅차던 문학을 무대화한 작품을 보고 싶다.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으로 고전 문학을 또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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