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가을 전어. 며느리는 왜 집을 나갔을까. 얼마 전 아침 방송 '인간극장'에 태안 어느 마을 노모를 모시고 사는 노부부가 나왔다. 부인은 치매를 앓는다. 그래서 살림을 남편이 하는데 뒤늦게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에 자주 눈물을 훔쳤다. 아내의 넋두리도 이어졌다. 가난한 집에 시집 와 시어머니의 시집살이에 한겨울 개울에서 빨래하면서 많이 울었다고. 남편은 집안일은 하나도 안하고, 시아버지도 여자 하는 일 남자는 절대 하는 게 아니라고 하고. 보따리 싸고 싶은 적이 숱했다고. 남편은 전어를 구워 아내에게 먼저 줬다. "전엔 먹을 게 있으면 내 입으로 먼저 갔어. 그렇게 인정머리가 없었어." 설거지 하는 남편을 보면서 아내는 안 해도 될 걱정을 한다. "어머니 보시면 야단맞는데."
전통적으로 며느리들의 삶은 가혹했다. 조선은 성리학의 영향으로 국가는 물론이고 가족 내 가부장제의 확립을 꾀했다. 가부장제는 남성권력의 절대화를 의미한다. 남성과 여성의 수직적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불평등의 강요는 구체적으로 제도화했다. <삼강행실도 열녀편>은 남성에 대한 여성의 성적 종속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열녀란 무엇인가. 남편을 따라 죽는 여자. 심지어 영조의 딸 화순옹주도 남편이 죽자 곡기를 끊어 죽음을 택했다. 로열패밀리인 옹주도 자결하다니. 개혁적인 왕으로 평가받는 정조마저 화순옹주의 죽음을 왕실의 도덕적 행위로 높이 평가했다. 열녀는 시대가 강요한 윤리였다.
아내를 소유물로 여긴 역사는 동서양 다를 바 없었다. 영국은 아내를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다. '아내 판매'는 20세기 초까지 벌어졌다. 이런 관습에서 19세기 말 입센의 <인형의 집>이 발표됐을 때 얼마나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을까. 아내나 어머니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찾아 허위와 위선 뿐인 '인형의 집'을 떠나는 노라. 남편에게 장신구였을 뿐 인간으로서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님을 깨달은 노라. 조선 말 인형이 되길 거부한 신여성 나혜석도 있다. 배운 여성 나혜석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가족의 외면과 사회적 비난과 조소를 받으면서 한 겨울 행려병자로 죽었다.
2021년을 사는 현대 여성은 어떤가. 호주제도 폐지되고 사회적으로 여성의 위상이 높아졌다. 허나 지금의 여성들, 행복할까? 여성의 주체적인 사유는 가능한가? 젊은 여성의 절반은 결혼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통계가 나온다. 맞벌이 가구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시간이 여성은 187분, 남성은 고작 54분이다. 기혼여성들은 회사 퇴근과 동시에 집으로 출근한다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자아가 강한 여성은 불합리한 결혼 구조를 깨닫고 새장을 탈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은 녹록지 않다. 자기만의 방과 돈이 있어야 독립이 가능한 법.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 건 단지 전어 맛이 그리워서였을까? <지방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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