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식 한양대 특임교수 |
세속적으로 성공의 기준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통상적으로 부와 권력의 획득이라고 여겨진다. 토론 문화가 가장 활발했던 기원전 5세기에서 4세기 사이의 그리스 로마에서는 오늘날 궤변가로 불리는 소피스트(sophist)들이 부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했다. 소피스트들은 궤변으로 상대 주장을 무력하게 만들고 토론의 승자가 돼 실리를 챙겼다.
아테네 시민 중 성공의 야망에 불타는 이들은 말 잘하는 방법을 터득하기 위하여 거액의 수업료를 기꺼이 지불하고 소피스트의 지도를 받고자 했으나, 유명 소피스트가 운영하는 아카데미의 문턱은 너무 높아 입학 대기자가 생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소피스트들의 일반적인 특징은 언제나 논쟁에서의 승리를 유일 최고의 목적으로 삼아 존재한다는 점이다. 도덕과 윤리는 무시하며 체면과 염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승리가 보장되거나 더 큰 이익이 생긴다면 찬성과 반대 입장을 수시로 바꾸는 기이한 행각을 서슴없이 보여줬다.
소피스트에게는 도덕과 윤리적 가치 기준보다는 부와 권력과 명성이 최고의 목적이자 지향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소피스트의 궤변은 결국 사회를 혼란으로 내몰고 갈등을 조장하며 파국을 부추길 뿐이다. 궤변은 왜곡된 근거를 교묘하게 동원하기 때문에 미혹하는 힘이 강하다. 궤변은 얼핏 보기에 그럴듯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자칫 사람의 마음을 혼미하게 만들고 결국은 빠져들게 한다. 궤변가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존재했으며 중국의 사마천은 궤변가를 일컬어 교묘한 말과 꾸미는 낯빛으로 지나치게 아첨한다고 성토한다. 그들은 셈이 빠르고 법률에 밝으며, 궤변으로 사람의 마음을 교묘하게 빼앗는다고 일갈한다.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러한 궤변으로 무장한 소피스트의 모습은 우리 주변 여러 곳에서 쉽게 그리고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오히려 더욱 정교해진 억지 논리로 진실을 왜곡하고, 양심에 철갑을 두르며, 얼굴을 수시로 바꾸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간다면 장땡이라는 소피스트의 논리에 현혹된 일부의 대중들이 얼핏 이러한 궤변가의 교활함과 영악함에 깜박 속아 이들을 지지하고 동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치의 영역은 사회 전반의 대립과 갈등 구조를 조정하고 해결하며, 가치와 이익의 배분을 권위적으로 결정하는 최종적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무소불위의 가능성을 약속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치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다수의 지지와 성원을 끌어내야 하는 것이 정치판에서 입신하려는 무리의 일차적 관건이다.
다음으로는 다수의 지지를 지속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궤변은 물론이거니와 억지와 거짓말도 당연하다고 여겨진 것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명제로 유명한 군주론의 저자인 마키아벨리( Niccolo Machiavelli)는 지도자의 필수 덕목에 거짓말을 포함했다. 진실을 말하기 위해 노력은 해야겠지만 진실로 인한 커다란 불이익이 발생할 가능성이 예상된다면 거짓을 행해도 된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논리다.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자질과 능력에는 궤변 구사 능력과 거짓말의 당연시가 요구된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매우 현실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집권과 승리만을 위하여 어떤 억지나 거짓말과 궤변도 정치인들과 정치판에서 당연히 인정돼야 한다면 동의할 수 있을까? 정치인의 수준은 결코 유권자의 수준을 능가할 수 없다는 케케묵은 이야기를 씁쓸하게 상기해본다. /신천식 한양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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