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나 대전중앙청과 대표 |
추석 때 보이던 홍로는 사라지고 어느새 사과의 왕인 부사가 존재감을 빛내고 있다. 그리고 이제 대표적인 겨울과일이라 할 수 있는 감귤도 노오란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하지만 오늘 나의 눈을 사로잡은 건 경매장 작은 한켠에 조용히 자리 잡은 홍시이다.
홍시는 생감의 떫은맛이 자연적이거나 인위적인 방법으로 제거되어 단맛이 강해지고 말랑말랑해진 상태를 의미한다. 연시는 물렁물렁하다고 하여 연시라 부르고 홍시는 붉다고 하여 홍시라고 부른다. 일반인들에게 홍시는 반시와 대봉시로 알려져 있다. 반시는 조금은 납작한 편원형이 모양에 담홍색의 주홍빛이 나며 아이들 주먹만 하고, 대봉시는 전반적으로 끝이 뾰족하면서 길쭉한 타원형의 모양에 담홍색보다 더 붉은빛이 강하고 남자 어른 주먹보다 크다. 달콤한 맛의 홍시는 숙취를 풀어주고 소화를 돕는 작용을 한다.
하지만 요즘의 대세인 샤인머스켓이나 11월 초부터 나오기 시작하는 딸기에 비해 아이들이 선호하지 않는 과일이 홍시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홍시의 향과 질감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면 하늘빛을 담은 투명함 속에 탱글탱글한 포도 알알이 풍성한 달콤함으로 승부하는 샤인머스켓이나 우선 향으로 유혹하고 톡톡 터지는 달콤상콤함으로 승부하는 딸기에 홍시는 애당초 아이들의 입맛을 사로잡기에는 태생적인 어려움이 있는지도 모른다.
코로나19 이후로 못 만났던 손자가 모처럼 놀러온다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일을 사러 나오셨다는 한 어른신께서 아직 경매장 한켠에 있던 홍시를 보시고는 홍시가 정말 맛나 보인다며 반가워하신다. 어른신은 아이들의 위한 샤인머스켓과 감귤 그러더니 잠시 망설이시는 듯 하더니 홍시 몇 개를 담으시면서 이거는 우리 신랑이랑 같이 먹어야겠다면서 함박웃음을 지으신다.
어르신을 보는데 갑자기 엄마가 생각이 나는 건 '홍시가 열리면 울엄마가 생각나고 홍시가 열리면 울엄마가 그리워진다'는 노래가사 때문인지, 코로나19로 인해 소홀해진 발걸음으로 인한 미안함 때문이지 잘 모르겠다. 잠시 짬을 내어서 대봉시를 한 상자 들고 엄마 집으로 향했다.
잘 익은 대봉시를 보시더니 벌써 홍시가 나왔냐면서 좋아하시는 엄마의 얼굴이 홍시만큼 발갛다. 홍시가 열리면 울엄마가 생각난다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괜찮다는데도 기어이 너도 하나 가져가라면서 주신 홍시를 집에 와서 맛보았다. 떫은 듯한 첫 느낌은 순식간에 달콤함으로 시원한 한입은 어느새 따뜻함으로 바뀌어서 부드럽게 목으로 넘어간다. 나도 이제 홍시의 맛을 아는 나이가 된 것 같다. 신기하게 쳐다보는 아들에게 한입을 권했으나 "으 이게 무슨맛이야" 하면서 줄행랑을 놓는다. 나는 살짝 웃으면서 혼잣말을 했다. 아들아! 이게 어른의 맛이란다.
생각해보니 홍시는 서리가 한 번 내려야 맛이 깊어진다. 우리의 삶도 미리 예측하고 앞뒤 균형을 맞추려 부단히 노력하지만 제대로 성공해본 적이 거의 없다. 홍시의 맛은 이러한 인생의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이거나, 찬서리 나무 끝에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세월의 여유를 가진 이들이 맛을 알 수 있게 만든 자연의 오묘함이 아닐까? 10월이 다 가기전 빠알간 햇 홍시 하나 놓고 어른의 맛을 아는 이와 홍시를 먹으면서 따뜻한 담소를 나누고 싶은 가을날이다.
송미나 대전중앙청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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