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뿐이랴, 누구라도 젊은 시절엔 번민과 넘치는 열정으로 열병을 앓는다. 어떠한 열정이냐가 문제이다. 열정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 필요한 것이 아니다. 15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부동산중개업소에 취직했던 버나드 쇼의 말이다. "나는 선천적으로 경쟁에 취약하다. 칭찬이나 표창을 받고 싶지도 않다. 따라서 경쟁을 전제로 하는 시험 따위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만일 내가 이긴다 해도 나의 기쁨보다는 상대방의 실망 때문에 내 마음이 아플 것이다. 반대로 내가 진다면 나의 자존심이 상할 것이다." 열정은 자신을 향한 부단한 성찰의 표출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열정이 사라지고, 특정 문제의식에 갇혀감을 느끼게 된다. 진리를 향한 열정과 세상을 바라보는 문제의식, 정의감이야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 아닐까? 그것을 잃는다는 것은 사람답지 못하다는 의미가 된다.
가끔 사회 역시 노후 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 의문을 갖게 된다. 역사를 들춰보면 그럴 때마다, 대 변혁이 일어난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첫 번째 망국의 원인으로 거짓말과 허위를 꼽았다. 거짓은 사실 또는 진실이 아니고, 허위는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인 것처럼 조작하는 일이다. 공리공론, 당파싸움도 사회악으로 통렬하게 비판했다. 그리하여 외친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라.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말아라. 꿈에라도 성실을 잃었거든 통회하라." 자성하라고 통탄만 한 것이 아니다. "묻노니 여러분이시여! 오늘 대한의 주인 되는 이는 몇 분이나 되는가, 민족사회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감이 있는 이는 주인이요, 책임감이 없는 이는 객이다. 진정한 주인에게는 비관도 없고 낙관도 없고, 제 일인 고로 오직 어찌하면 우리 민족사회를 건질까 하는 책임심 뿐이다." 주인정신(主人情神)을 강조한다. 주체적으로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문제의식, 참여의식, 책임의식이다.
비단 사회와 국가의 주인이 되는 것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삶에 진정한 주인이 되는 것이 먼저다. 수처작주(隨處作主)란 말이 있다. 가는 곳마다, 일마다,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는 말이다. 언제나 자신의 본분을 잊지 말고 주체적으로 살라 한다. 중국 당나라 선승 임제의현(臨濟義玄)의 설법과 언행을 수록한 책 『임제록(臨濟錄)』에 나온다.
어떤 책을 읽다 보면 쉽사리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천학비재(淺學菲才)인 탓이리라. 종교 서적도 그중 하나이다. 해설서를 접하고서야 희미하게 의미가 다가온다. 계속해서 내용을 보자, "~ 손님인지 주인인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이와 같은 무리들은 삿된 마음으로 도에 들어왔다. 그러므로 이해득실과 시시비비의 번잡스런 일에 곧바로 빠져버리니 진정한 출가인이라고 이를 수 없다. 그야말로 바로 속된 사람[俗人]이다."
사람이 본성이 있는 것처럼 세상사도 본성이 있다. 그 본성을 잃을 때 혼란스러워진다. 본말전도(本末顚倒)이다. 윗글에서 도를 정치라고 놓고 보자. 정치가 무엇인가? 정치를 왜 하는가? 진정한 정치인은 무엇인가? 똥오줌도 못 가리고 이해득실과 시시비비에만 매달려서야 되겠는가? 정치 외적인 사람만도 못해서야 될 일인가?
요즘 세태를 보자면 어느 한쪽은 거짓이요, 허위임이 분명하다. 그것이 만연하는 사회는 패망한다. 엄단 하여야 한다. 그러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주인이 없어서요, 각자 주인이 되지 못해서이다. 반복하지만, 주인의 첫 번째 덕목은 무한한 책임감이다. 모두가 내 탓이다. 다시 도산이 말한다.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되라. 백성의 질고를 어여삐 여기거든 그대가 먼저 의사가 되라. 의사까지는 못 되더라도 그대의 병부터 고쳐서 건전한 사람이 되라."
깨닫지 못하면 일생이 수고롭기만 하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주인인가? 객인가? 자성하고 다짐해 본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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