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그리고 선택적 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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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그리고 선택적 추론

이창화 대전을지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승인 2021-10-21 10:35
  • 신문게재 2021-10-22 19면
  • 김성현 기자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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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화 교수
"연애할 때는 자상하고 부드러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결혼하고 나니까 완전히 다른 사람인 거예요. 거칠고 자기 맘대로 하려고 하고..." 남편과 갈등으로 진료실을 찾은 환자들에게 흔히 듣는 말이다. 결혼 전에 본 남편과 결혼 후의 남편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정말 남편은 결혼 후에 다른 사람이 된 것일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여성은 연애를 할 때는 남편이 될 사람의 좋은 면만 본 것이고 결혼을 하고 나서는 남편의 나쁜 면만 본 것이다. 남편은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같은 사람이었는데 단지 이 여성이 시기에 따라서 남편의 한 쪽 측면만을 본 것이다.

입체주의(cubism)의 거장인 스페인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 난해하다. 그의 대표작인 <아비뇽의 처녀들>을 보면 5명의 여자들이 그려져 있는데 사람의 앞면을 그린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앞면과 동시에 뒷면도 그려져 있고 옆면도 그려져 있다. 한 평면에 사람의 모든 면을, 마치 주사위의 평면도를 펼쳐서 그리듯이 모두 표현하고 있다. 사람의 모든 면을 주의 깊게 바라보는 것, 이것이 입체주의 화가의 그림이고 그래서 때로는 그 그림이 난해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볼 때, 어떤 상황을 평가할 때, 때로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을 할 때도 자기가 보고 싶은 면만 보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아론 백(Aron Beck)이 말한 인지적 오류(cognitive error) 중의 하나인 선택적 추론(selective abstraction)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특정한 사건과 관련된 일부의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여 그것이 마치 전체를 의미하는 것처럼 잘못 해석하는 것'이 선택적 추론이다. 사람은 누구나 선택적 추론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이런 선택적 추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선택적 추론이 나도 모르는 내 마음, 즉 나의 무의식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장점만을 보아서 그 사람이 단점이 하나도 없는 너무도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한 개인에 대한 감정이 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박사모>, <문빠>, <아미(BTS의 팬덤)>처럼 대중적인 인물에 집단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 사람이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그 어떤 것이 되었든지 모두 옳고 바람직하게 느껴진다.

반대로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그 사람의 단점만을 보기 때문에 좋은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나쁜 사람으로 생각해서 그 사람을 극도로 싫어하고 미워하기도 한다. 때로는 어떤 정치적 이념의 좋은 점만을 보기 때문에 그 이념만이 최고인 것처럼 보여서 그 이념과 다른 정치적 이념들을 악으로 규정하고 제거해 버려야 할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때로는 어떤 상황에 부닥칠 때 그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보아서 절망해서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더욱더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선택적 추론을 할 때다. 자기 자신의 부정적인 면만 보아서 자기는 무능력하고 성격도 나쁘고 가진 것도 없어서 세상을 살아갈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럴 때 사람은 우울과 불안, 두려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은 단점만큼이나 장점도 있다. 내가 처한 상황은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면도 있는 것이다. 나 자신도 단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점도 많은 사람이다. 단지 내가 그런 것들의 단점만을 보고 있는 것이다.



피카소가 한 화면에 사람의 앞면, 옆면, 뒷면을 모두 그린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 나 자신, 정치적 이념, 내가 처한 상황의 한쪽 면만을 보지 않고 여러 측면을 볼 수 있다면, 다른 사람에 대한 미움, 다른 집단에 대한 분노, 나 자신에 대한 불안과 절망에서 벗어나서, 보다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보다 평안한 마음과 자신감을 가지고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창화 대전을지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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