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齊)나라 왕 한신(韓信)에게 괴통이 찾아와 천하 삼분지계를 논하며 한 말이다.
괴통은 연나라와 조나라를 잇따라 합친 한신이 유방의 한(漢)과 항우의 초(楚)와 천하를 나눠 가져야 한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한신은 괴통의 제안을 받지 않았다. 결국 한신은 천하 통일의 꿈을 유방에 넘겨야 했고 괴통의 계책을 쓰지 않은 것을 땅을 치고 후회했다고 한다.
시지불행 반수기앙은 때가 왔는데도 실행하지 않으면 어려움이 생긴다는 상황에 빗대 쓰곤 한다.
문재인 정부가 제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이른바 혁신도시 시즌2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한신과 괴통의 일화가 오버랩 되는 느낌이다.
혁신도시 시즌2는 2018년 9월 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수도권의 122개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추진하겠다"고 불을 당겼다.
문 대통령도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총선을 거치면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고 민주당도 지난해 총선공약으로 내걸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정부의 좌고우면이 길어지면서 지역에선 혁신도시 시즌2를 내년 대선용으로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졌다.
그러자 정부가 움직이는 듯했다. 김부겸 총리는 얼마 전 지역 민방과의 특별대담에서 "올가을에 어느 정도 큰 가닥을 잡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빠르면 문 대통령과 전국 시도지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던 지난 14일 초광역협력 지원전략 보고 행사에서 베일을 벗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거기까지였다. 문 대통령이 제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이다. 민심은 악화일로다. 충청과 영호남 시민단체들은 13일 정부세종청사 집회에서 "문재인 정부가 2단계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구체적 계획 없이 희망 고문만 한다"고 힐난했다.
나아가 자신들의 요구가 무시된다면 정부의 사과와 결단을 촉구하는 실력행사에 돌입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들의 강경한 태도 기저엔 생존의 문제가 깔려 있다. 인구와 일자리 감소로 적지 않은 곳이 멀지 않은 시기 소멸을 걱정하고 있다.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소멸위험 지역은 지난해 5월 93곳(40.8%)에서 올 4월 105개(46.1%)로 증가했다는 한국고용정보원 통계에서 확인된다.
반면, 수도권은 과밀화로 동맥경화에 걸린 지 오래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영양실조와 동맥경화에 걸린 수도권과 지역이 각각 균형을 찾아가는 모멘텀이 될 것임이 자명하다.
다른 이유도 있다. 충청권을 비롯해 부울경 호남 등은 초광역협력에 착수했다. 수도권에 견줄 거대 경제권을 만들어 소멸위기에 대응하겠다는 의지다.
이와 동시에 공공기관 지방이전이 시작되면 시너지 효과를 높여 지역의 경쟁력을 극대화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내년 대선을 앞둔 각종 여론조사에선 정권교체 여론이 정권 재창출 여론보다 대체로 높게 나타난다. 문재인 정부는 올가을이 지나기 전 공공기관 지방이전 청사진을 내놔야 한다. 다시 실기(失期)한다면 2200년 전 한신이 그랬던 것처럼 만시지탄(晩時之歎) 할지도 모른다.
<강제일 서울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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