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 아, 큰 별이여, 이완구 총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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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 아, 큰 별이여, 이완구 총리여!

김용복/ 칼럼니스트

  • 승인 2021-10-17 16:22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여기 한 거인이 우뚝 서서 잠들어 계시다.

이곳에서 태어나 모진 세상풍파를 대의의 강직함으로 맞서며 오로지 국가발전에 한 몸을 던져 청렴의 획으로 굵은 삶을 매듭지었던 분. 20대 약관의 나이로 입신하여 경찰청장, 국회의원, 도지사, 국무총리의 40여 년 공직의 역정동안 강하고 큰 정치의 족적을 남기면서도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배려와 작은 약속도 잊지 않으셨던 가늠이 깊었던 분.

세상의 것 아홉(九)을 이루면서도 열(十)을 탐내지 않으셨던 분.

그 이완구(李完九) 국무총리가 고향에 감사하며 그 모습으로 이곳에 고이 잠들어 계시다.



2021년 10월 14일 우보(牛步) 최민호(崔旼鎬) 기림.』

2021년 10월 16일 오후 3시. 청양군 비봉면 신원리 2구 마을 뒷산.

이완구 전 총리의 비서실장직을 맡아 총리를 모셨던 최민호 비서실장이 쓴 업적을 기리는 비문의 내용이다.

이날 추도사에서 최민호 실장은 "저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별안간 총리님께서 위중하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전갈에도 저는 믿지 않았습니다. 총리님에 대해 회자되는 보좌관들의 전설같은 구전을 들어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디안에게 붙잡혀도 얼마 후 추장이 되어 나타날 분. 사막에 떨어져도 어디선가 물동이 들고 나타나실 분. 열 번 넘어져도 벌떡 일어서는 오뚜기 같으신 분.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모진 세파 속에서도 결국은 다시 일어나곤 했던 분이기에 저리 누워 계시다가 다시 일어나실 줄만 믿었습니다. 그런데 말씀 한마디 못 듣고 떠나고 마시다니요. 도저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라며 오열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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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를 낭독하는 최민호 전 이완구 총리 비서실장.
최민호 실장은 물론 필자와 이곳에 조문 차 오신 백여 명의 인사들께서도 최민호 실장이 추도사를 낭독하는 동안 함께 흐느끼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보자.

이완구 전 총리께서는 가까운 지인들에게 '언젠가 나도 세상을 떠나겠지. 나의 묘는 고향에 쓰고 싶소. 나를 태어나게 해 준 고향에 그렇게 감사드리고 싶소. 검소하게, 무엇보다 진솔하게 과장도 미화도 없이 이해하고 담담한 품위로 나의 생을 새긴 다듬어지지 않은 비석 하나면 족하겠소. 그리고 그럴 수만 있다면 땅 속에서라도 나라를 지키고 싶소' 라고 하시던 말씀이 뇌리에 생생했기 때문이었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시겠다던 분.

충남도지사가 되었을 때, 전임 도지사를 10여 년 보좌하던 비서진을 그대로 자신의 비서로 임명하시던 배려, 또한 공직 40여 년간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자선봉사 단체에 아무도 모르게 기부를 해오셨던 일이나, 공무원 인사를 능력에 따라 공정히 하라며 그 흔한 외부청탁 쪽지 한 장 인사과에 내려보내지 않으시고 공정하게 법의 규정에 의하여 인사업무를 처리하셨던 일.

그 이외에도 이완구 총리의 인간다운 모습이나 최민호 비서실장이 오열을 하면서 낭독한 작별인사는 예서 생략하기로 하고 양승조 충남지사와 이날 수고한 경찰관 이야기 안 할 수가 없다.

이완구 총리의 고향이 어디인가? 청양군 비봉면 신원리 2구이다. 이곳은 두메산골 중에서도 가장 오지인 깊은 산골이다. 이완구 총리의 시신이 자신의 고향에 묻힌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양지사는 이곳에 이동식 화장실이 장착된 차량을 보내 조문객들의 편의를 도울 뿐만 아니라, 영구차가 들어갈 수 있도록 좁은 커브길을 시멘트포장하여 넓혀 주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으며, 청양경찰서 소속 경찰관들과 비봉파출소 지구대 이철흥 경위도 순찰차를 이끌고 와 안내하는 모습이 눈물겹게 고마웠던 것이다.

필자는 내비게션의 안내를 따라 핸들을 돌렸지만 워낙 시골길이기에 길을 잃어 방황하던 차에 순찰차를 만났던 것이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순찰차로 달려가 "여, 구세주, 이완구 장례식장 어디로 가야 돼요"하고 물었다. 이런 때 경찰을 만난다는 것은 구세주를 만난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들은 빵조각으로 점심을 때우고 있었다.

다시, 최민호 실장의 추도사로 돌아가자.

이완구 총리님.

저 세상에 가셔서라도 사모님과 사랑하는 두 아들 며느리, 그리고 남아있는 가족을 지켜 주시고, 위태로운 이 나라를 지켜주십시오. 총리님이 평생 그렸던 내 작은 이익을 버리고 어려운 사람과 보다 많은 사람이 행복을 나눌 수 있는 공의롭고 배려심 있는 미래가 다가올 수 있도록 우리 후손들을 축복해 주십시오.

총리님. 이제 그리시던 고향에 돌아오셨습니다.

그간 말할 수 없이 괴롭혔던 병마의 고통에서, 참을 수 없이 왜곡된 질곡의 사회에서, 난마처럼 얽힌 어지러운 정치현실에서 벗어나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절통하고 애끊는 일이지만 그간 5백만 충청인, 아니 5천만 국민이 기대하고 의지하였던 아쉬움을 뒤로하고 총리님을 떠나 보내고자 합니다.

어릴적 구름을 바라보며 꿈꾸었던 평화로운 태초의 순간을 영원히 즐기시며 영면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아직도 총리님과의 이별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안녕히 가시고 편히 쉬십시오.

2021년 10월 16일

이완구 국무총리 비서실장 최민호 삼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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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 전 총리 장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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