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묵 충남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
세자로 책봉되기 전의 왕의 맏아들을 원자라고 한다. 원자 시절에는 태어난 직후부터 보양청에 의해 보육을 받게 되고, 4~5세에 이르게 되면 강학청의 주관하에 처음으로 글을 배우기 시작한다. 세자로 책봉되면 이전보다 훨씬 체계적인 교육을 받게 된다. 세자는 먼저 입학례(入學禮)를 거쳐 성균관 유생의 지위를 얻게 되고, 이때부터 조정에 세자시강원이 구성되어 세자 교육을 담당하게 된다. 시강원 교육에는 사(師), 부(傅), 이사(貳師), 빈객(賓客) 등의 초빙된 겸직 스승과 전담 관원이 참여하는데, 그 인원은 20명 정도였다고 한다. 스승으로는 영의정을 비롯한 원로대신들이 모셔졌다. 사는 영의정이 맡고, 부는 좌의정 또는 우의정이 맡았다고 전해진다.
시강원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을 서연이라 했는데, 서연은 기본적으로 매일 한 차례 열렸고, 조강(朝講)과 석강(夕講)의 형태로 아침과 저녁에 열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주로 주강(晝講)의 형태로 낮에 이루어졌다. 때때로 소대(召對) 및 야대(夜對) 등의 비정규 강의도 이루어졌다고 한다. 왕세자 교육에 있어서 당시 사대부 집에서 이루어지던 자녀 교육과 마찬가지로 성리학에 바탕을 덕성 함양과 실천이 강조되었다. 교재로는 사서, 오경 및 역사서 등이 활용되었고 이들에 앞서 소학이 먼저 읽혔다. 학습 방법으로는 배운 내용의 암송이 주로 사용되었다. 오늘날의 수시시험처럼 학습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 스승과 관원이 함께 참여하는 회강(會講)이 한 달에 두 번 정도 개최되었다. 회강에는 왕이 직접 참석하는 경우도 있었고, 학습 결과는 오늘날 사용되는 수, 우, 미, 양, 가와 같이 5단계로 평정되었다.
조선의 세자 수업은 가혹할 정도로 엄격했다. 원칙적으로 매일 수업을 받아야 했고, 수업 내용을 외워야만 했고, 또 자주 평가를 받아야만 했다. 세자들 중에는 이처럼 엄격한 지도자 수업이 가져다주는 압박을 이겨내지 못해 세자 지위로부터 폐위되거나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경우도 있다. 반대로 적극적으로 서연에 참여해 자질을 함양한 결과, 후세에 현군으로 추앙받는 왕도 있다. 조선의 지도자 수업은 왕이 된 이후에도 부과되었다. 세자 시절의 지도자 수업으로 서연이 있었다면 왕이 된 후의 지도자 수업으로는 경연이 있었다. 경연에 성실하게 참여한 왕과 그렇지 못한 왕은 통치력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요즘 차기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후보자를 뽑는 경선이 한창이다. 여당은 불과 며칠 전에 후보자 선출을 끝냈고, 원내 제1야당은 후보자를 4인으로 압축시킨 가운데 경선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경선 과정의 토론과 논박을 통해 떠오른 후보 검증의 핵심 포인트는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이다. 역대 선거에서도 자질 문제가 거론되기는 했었지만, 이번처럼 이 문제가 중요한 관심사로 등장한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조선시대는 권력자가 이미 정해졌기 때문에 그에게 어떻게 보다 높은 수준의 덕성과 자질을 불어넣을 것인가의 문제가 남은 과제였다면, 지금 시대에는 후보자들의 말과 행동을 자료로 삼아 제각각 살아온 사람들의 자질을 평가하여 믿을만한 권력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후보자의 자질 검증에 있어서 가혹할 만큼 철저해야 하고 그 방법 역시 체계적이어야 한다. 당사자들이 하는 말보다 객관적인 지표를 통해 검증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박재묵 충남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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