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만상]으로 스타덤에 오른 가수 윤수현의 <손님 온다>이다. 노래 가사를 보자면 영락없는 단골손님이다. 단골손님은 늘 정하여 놓고 거래를 하는 손님을 말한다. 어쩌다가 한두 번 찾아오는 뜨내기손님하고는 격과 차원이 다르다.
밑반찬이 떨어지면 그야말로 무한리필로 추가해준다. 요즘이야 그런 일이 사라졌지만, 과거엔 단골손님에게 외상을 주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값은 나중에 치르기로 하고 물건을 사거나 파는 일을 '외상'이라고 한다.
간혹 외상을 떼먹는 사람이 있었지만 실봉(빚을 꼭 갚을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랬기에 설혹 외상값을 못 받아도 그럭저럭 식당을 꾸려갈 수 있었다.
윤수현은 이어지는 노래에서 "4월에 오는 손님은 사랑 주고 받고 싶은 손님"이고, 요즘 같은 "10월에 오는 손님은 시원시원 손이 커서 큰 손님"이라며 반가움을 드러내고 있다.
대저 손이 큰 사람은 마음도 바다처럼 넓다. 반면 손이 작으면 도량도 좁다. 사람은 십인십색(十人十色)으로 생긴 모습과 품고 있는 생각까지 제각각 다르다. 나는 예전부터 무언가 좋은 일이 있으면 남에게 밥과 술 사기를 좋아했다.
모 언론사에서 근무할 때 딸이 명문대에 합격했다. 기분이 너무 좋아 자제할 수 없었다. 직원들을 모조리 데리고 유명한 중국음식점을 찾았다. "오늘은 제가 내는 거니까 맘껏 드십시오!"
나의 호언장담에 직원들 입이 찢어졌다. 그야말로 '한턱내다'였다. 이는 남에게 푸짐하게 음식을 대접하는 일이라서 주머니가 가벼운 서민이 자주 한다는 건 힘들다. 하지만 남아가 되어서 그깟 일도 못 한다면 그게 어찌 사내라 하겠는가.
아무튼 이후로도 귀한 손님을 맞거나 진중한 회의 등이 있을 때면 그 중국음식점을 단골로 찾았다. 다음 주에 그 식당에서 또 귀한 손님을 만나기로 했다.
근처에 지하철역이 있어서 접근성이 뛰어난 데다가 맛까지 출중하여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음식점이다.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와 식당, 노래방, 카페 등에 대한 영업 제한 조치로 인해 많은 자영업자가 파산하거나 위기에 몰리는 등 최악의 상태에 봉착했음은 다 아는 상식이다.
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을 마친 국민이 급증하자 여당은 "식당과 카페 등의 영업을 밤 10시에서 12시로 늘리되, 이 시간대에는 백신 접종자만 예외적으로 이용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해당 업종과 업주로서는 정말이지 오랜 가뭄 끝에 맛보는 단비에 다름 아닌 낭보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된다면 연기처럼 사라졌던 단골손님들도 성큼성큼 다시 들어설 것이라는 건 상식이다.
나는 또 다른 단골식당이 많다. 한데 그동안의 공통현상은 오후 일정 시간만 되면 손님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적막강산으로 돌변했다는 사실의 발견이다. 영업시간을 자정까지만 연장해도 그동안 잃었던 단골손님은 대부분 귀순(?)하기 마련이다.
그래야 자영업자도 먹고살 수 있다. 업주의 입장에서 가장 즐거운 것은 단연 '손님 온다'이다. 그레셤의 법칙에서 '악화(惡貨)는 양화(良貨)를 구축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당장 시급한 자영업자들로선 일종의 악화랄 수 있는 외상손님조차 반가운 게 요즘 현실이다.
윤수현과 나의 이어지는 응원 합창처럼 "11월에 오는 손님은 십시일반 동네손님이길, 12월에 오는 손님은 시비 않고 매너 좋은 멋쟁이 손님"이길 기대한다.
홍경석 / 작가·'초경서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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