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빈소에 영정사진이 놓여있다. 이 전 총리는 2012년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골수증을 진단받은 이후 골수이식을 받고 건강을 회복했다가 2016년에 이어 최근 혈액암이 재발, 투병 생활을 이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 |
저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별안간 총리님께서 위중하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전갈에도 저는 믿지 않았습니다.
총리님에 대해 회자되는 보좌관들의 전설같은 구전을 들어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디안에게 붙잡혀도 얼마 후 추장이 되어 나타날 분.
사막에 떨어져도 어디선가 물동이 들고 나타나실 분.
열 번 넘어져도 발딱 일어서는 오뚜기 같으신 분.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모진 세파 속에서도 결국은 다시 일어나곤 했던 분이기에 저리 누워 계시다가 다시 일어나실 줄만 믿었습니다.
그런데 말씀 한마디 못 듣고 떠나고 마시다니요.
도저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떨던 지난 6월말 저에게 전화를 걸어 남기신 말씀이 총리님이 마지막 유언이 되고 만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언젠가 나도 세상을 떠나겠지.
나의 묘는 고향에 쓰고 싶소.
나를 태어나게 해 준 고향에 그렇게 감사드리고 싶소.
검소하게, 무엇보다 진솔하게 과장도 미화도 없이 이해하고 담담한 품위로 나의 생을 새긴 다듬어지지 않은 비석 하나면 족하겠소.
그리고 그럴 수만 있다면 땅 속에서라도 나라를 지키고 싶소.'
되돌아보면 총리님은 믿기지 않는 일을 많이도 하신 분이었습니다.
충남도지사가 되어 전임 도지사를 10여년 보좌하던 비서진을 그대로 자신의 비서로 임명하셨던 일.
아들 결혼식을 행정부지사였던 저도 모르게 몰래 치루던 일.
공직 40여년간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자선봉사단체에 아무도 모르게 기부를 해오시던 일.
공무원 인사를 능력에 따라 공정히 하라며 그 흔한 외부청탁 쪽지 한 장 내려 보내지 않으셨던 일.
'내 자리 보전하자고 도지사 된 것 아니야' 하면서 자신의 재판을 코 앞에 두고도 해외투자유치 출장을 떠나시던 일.
그 어렵게 당선된 도지사직을 '직을 걸고 세종시를 사수하겠다는 약속을 지킨다'며 가차없이 사퇴하던 일.
누가 이런 일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겠습니까.
또 있습니다.
국무총리가 되어 저를 비서실장으로 임명하시면서 '이제 내가 무얼 더 바라겠소. 국민에게 맺힌게 있다면 풀고, 사회가 막힌게 있다면 뚫고, 사람간에 얼어붙은 관계가 있다면 녹여내어 세상이 스스로 돌고돌게 하면 되는 것 아니겠소. 그럴 수 있게 나 좀 도와주시오. 제발 부탁이오.' 하시던 말씀.
억울한 일을 후세에 해명하기 위해서라도 자서전을 쓰시라는 저의 고언을 고개를 흔들며 하시던 말씀.
'다 부질없소. 내가 정치를 하지만 진실은 진실이 밝히는 법' 이라며 굳이 미화할 것 없다던 말씀.
충남도와 국가를 위해 하신 크고 많은 믿을 수 없는 업적은 여기서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믿을 수 없는 일 투성이입니다.
'경험해 보지 않았소? 꼭 도와줄 줄 믿었던 사람이 정작 필요할 때 안 도와주지 않던가요? 그런가 하면 도저히 도와줄 것 같지 않은 사람이 뜻밖에 나타나 도와주지 않던가요?'
그러면서 저에게 힘을 주어 하시던 말씀.
'그렇게 도와준 사람 잊지 마시오.'
세상은 믿을 수 없습니다.
아끼시던 주변 분들께 하직인사 조차 나누지 못하고 홀연 떠나 버린 믿어지지 않는 총리님의 죽음 앞에 저는 다시 한 번 믿을 수 없는 현실을 실감합니다.
비통함에 실로 애석하기 그지 없습니다.
존경하는 이완구 총리님.
하지만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이 자리에서 저는 또 믿어지지 않는 일을 총리님께 간곡히 바라고자 합니다.
'총리님.
저 세상에 가셔서라도 사모님과 사랑하는 두 아들 며느리, 그리고 남아있는 가족을 지켜 주십시오.
위태로운 이 나라를 지켜주십시오.
거짓과 오만불손과 이기주의와 탐욕스런 지도자가 이 사회를 오염시키고 오도하지 않도록 저 세상에서 이 나라를 구해 주십시오.
총리님이 평생 그렸던 내 작은 이익을 버리고 어려운 사람과 보다 많은 사람이 행복을 나눌 수 있는 공의롭고 배려심있는 미래가 다가올 수 있도록 우리 후손들을 축복해 주십시오.
총리님.
이제 그리시던 고향에 돌아오셨습니다.
그간 말할 수 없이 괴롭혔던 병마의 고통에서, 참을 수 없이 왜곡된 질곡의 사회에서, 난마처럼 얽힌 어지러운 정치현실에서 벗어나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절통하고 애끓는 일이지만 그간 5백만 충청인 아니 5천만 국민이 기대하고 의지하였던 아쉬움을 뒤로하고 총리님을 떠나 보내고자 합니다.
어릴적 구름을 바라보며 꿈꾸었던 평화로운 태초의 순간을 영원히 즐기시며 영면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아직도 총리님과의 이별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안녕히 가시고 편히 쉬십시오.
이완구 국무총리 비서실장 최민호 삼가 올립니다.
최민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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