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나, 나는 생각하는 게 따로 있어 주변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출판기념회도 좋지만 지금껏 사는 동안 내 존재가치를 느끼게 해준 고마운 분들이 많았으니 그 분들께 보은하는 점심 한 끼라도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며칠 숙고 끝에 마음을 굳혔다. 평생 잊을 수 없는 고마운 분들께 드리는 점심 한 끼 소찬이지만 깜냥껏 정성과 마음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모시는 시간은 10월 26일 12시로 했다. 장소는 대전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중국음식점 태화장으로 했다. 보름 전에 예약을 마쳤다.
초청 대상은 평생 보은으로도 안 될 것 같은 분들만 모시기로 했다. 고마움으로 사무치는 분들 명단을 작성하여 초청 문자를 띄웠다. 전화로 참석 여부까지 확인했다. 국향이 제철인 가절에 행사까지 많은 절기다 보니 모셔야 할 분들을 다 모시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도 생겼다.
초청 문자를 보내기 전에 전화로 일정이 어떤지를 알아보고 다음과 같은 분들께 문자를 띄웠다.
내 평생 교직생활이 순탄하게, 영예롭게 끝날 수 있도록 인생스승 견인차 역할까지 해 주셨던 이용만 선배와 그 부인 김경숙 여사님, 비명으로 간 아낼 보내고 절망에 빠져 식사도 못하고 비실거릴 때 점심시간이면 나에게 밥 먹이려고 3층 교무실까지 올라오셔 왼팔 오른팔을 잡고 끌고 구내식당으로 가셨던 2010년도 유성고 홍상순, 전용우 교장교감 선생님, 사궁지수(四窮之首)의 딱한 처지를 걱정하여 수시로 끼니반찬, 겨울 김장까지 해를 거른 적이 없었던 한정식 음식점 < 자미지미 > 남성문 여사님, 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따뜻한 격려로 말벗이 돼주고, 손수 만든 찬까지 수시로 조달해 주셨던 가슴이 따뜻한 김순자 부장님, 내 그림자를 보내고 밥맛까지 잃어 측은한 흉물이 돼가는 꼴불견에게 발신인 없는 보약박스 택배를 보내왔던,40년 전 대전여고 제자 정길순 교사, 대천에 전원주택을 지어준다며 매년 겨울마다 김장을 해 보내고, 연금 타는 거 아끼느라 보일러도 틀지 않는다고 전화경고까지 주었던, 선생님을 가르치는, 충남고 제자 정지식과 그 부인 한창숙 여사, 동병상련이었는지 허물없는 대화로 속마음까지 주고받으며 은연중 힘이 돼 주었던 중학교 동창 오기환 친구, 내 인생 정신적 지주가 되어 날 천주교에 입문하게 했으며, 인생 희로애락을 같이 하는 우정의 힘으로 고난을 극복하게 했던 대부(代父) 전용돈 친구, 고등학교 동기지만 문단 선배로서 글 쓰는데 알게 모르게 믿음직한 길잡이가 돼 주었던 전병기 친구, 교직생활 퇴직하고 쉬고 있을 때 <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끝나고 말거야? > 하며 만날 때마다 글 쓰라고 갈구었던 김용복 형님과 엄기창 선생님, < 문학사랑 > 신춘문예를 통해 수필가의 등용문에 오르게 해 주셨던 리헌석 회장님이었다. < 문학사랑 > 김영수 학장님을 비롯한 박종국 수필가, 촤자영 시인, 이완순 소설가님도 응원의 발걸음을 하셨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주며 옆에서 도와주는 문인들의 손길과 응원이 없었더라면 내 어찌 수필가의 냄새를 풍길 수나 있었으랴!
오찬 행사 전날 나는 한국효문화진흥원에서 근무 중이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충남고 정지식 제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주고받은 대화 내용은 이러하였다.
<제 명색이 대천 바닷가에 사는데, 내일 행사장에 그냥 갈 수가 없어 대하(大蝦) 좀 사놨습니다. 마침 대하가 제철이고 해서 가지고 가려 하는데 거기 오시는 가족이 몇 세대나 되십니까? >
<그런 얘기 하지 말게나. 내 출판기념회를 않는 것도 오시는 분들 부담스러울까봐 피한 것이니, 그런 걱정 하지 말고 그냥 와서 점심이나 맛있게 들고 가면 되네. 제발 그냥 오게나. >
드디어 10월 26일이 되었다. 예약된 시각보다 1시간이나 일찍 도착하여 챙길 게 없나 살피었다.
정오 12시가 돼서야 < 문학사랑 > 리헌석 회장이 오찬 자리 사회 마이크를 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두 세 분이 신경 쓰였지만 바쁜 분들을 위해 오찬 개회사를 하게 했다. < 문학사랑 > 관련 문인 소개는 리헌석 회장이 하고, 내 관련 가족, 제자, 친구, 지인 소개는 내가 하기로 했다.
<오늘 이 자리는 평생 보은으로도 안 되는 소중한 분들만 모셨습니다. 식사를 하기 전에 참석해주신 소중한 분들을 우선 소개하고 식사를 하시도록 하겠습니다. >
인사소개가 시작됐다. 소개할 때마다 박수가 나왔지만 40년 전 정길순 제자와 35년 전 정지식 제자가 소개될 때에는 유난히 박수 소리가 크게 나왔다. 자랑스러운 제자들이어서 그랬던 거 같았다. 소게가 끝난 뒤에 간단한 멘트 한 마디씩 하게 됐는데 정길순 제자와 정지식 제자가 한 마디씩 했다. 유난히 박수 소리가 커서 잘 들어 보니 두 제자의 나에 대한 찬사였다. 못 다한 얘기가 있었는지 정지식 부국건설 대표이사가 빛나는 훈장보다도 더 솔깃한 얘기를 했다.
"제 그냥 올 수 없어서 대천에서 대하 몇 박스 가져 왔으니, 가실 때 한 박스씩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헤아려 보니 ㎏ 당 25,000원씩이나 하는 그 비싼 대하를 3㎏ 선물박스 30개를 마련해 온 거였다.
여기저기서 나오는 이야기가 두 제자에 대한 찬사가 주류를 이루었다. 현장에서도 들었지만 나중에 들려오는 이야기가 "나도 평생에 남선생 같은 제자 하나만 있어도 좋겠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내 39년 교직생활 마치고 퇴임할 때 받은 훈장은 빛바랜 모습으로 진열장 속에서 무용지물이 돼가고 있었다. 하지만 두 제자가 증서도 없이 만들어 준 보이지도 않는 그 훈장은 세상 그 어떤 훈장보다도 나를 빛나게 하고 있었다. 마음의 포로가 될 정도 어쩌지 못하는 마음으로 무르녹고 있었다.
30년보다, 40년보다 더 오랜 세월 속에도 옛날 선생님을 잊지 않고 보약 박스를 챙기고, 전원주택을 지어 준다던 따뜻한 가슴에서 나온, 세상 어떤 사람도 받을 수 없는, 그 훈장이, 가슴 가슴을 녹이고 있었다. 태양의 빛나는 어떤 햇살보다, 어떤 발광체에서 나오는 섬광보다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꿈틀거리는 수많은 가슴 가슴을 무르녹이고 있었다.
'보은의 오찬에 제자가 달아 준 훈장',내 많은 상을, 표창을 받아봤지만 증서도 없이, 상패도 없이, 제자가 달아주는 그 훈장은 세상 어떤 훈장보다도 기쁨을 주고 마음을 녹이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대한민국 홍조 근정훈장까지 받아봤지만 이처럼 몸과 마음을 행복하게 빛나게 하는 것은 없었다. 제자가 잘 되고 훌륭하게 됐을 때 교사들이 통상적으로 듣고 싶은 말이 청출어람(靑出於藍)인데, 내가 그 가 그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옛날엔 내가 제자들에게 교과서적인 지식을 가르쳤지만, 현재는 제자들이 나에게 그 어떤 책에도 없는 소중한 깨달음을 주고 있었다. ' 선생님을 가르치는 제자 '가 아닐 수 없었다. 청출어람의 기쁨이 어디 따로 있다 하겠는가!
이 자리에 오신 평생 보은으로도 안 되는 소중한 분들이시여! 소찬이지만 정성과 마음을 다했으니 맛있게 들고 가소서.
'보은의 오찬에 제자가 달아 준 훈장'
보아서 빛나는 눈부심보다
보이지 않는 즐거움으로, 무르녹는 사랑으로
꽁꽁 묶어 천 년 만 년 가는 세월의 향이 되게 하소서.
남상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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