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정 시인(미룸 갤러리 관장) |
이십 년 전 어느 단체에서 주최한 독후감 대회 심사를 하기 위해 테미 도서관을 갔을 때 한 생각이다. 그 이후 이 동네가 크게 변했냐면 그렇지도 않다. 테미 도서관이 미술 창작센터가 되고 비어있던 도지사 관사촌이 '테미 오래'라고 이름을 달고 전시와 공연을 하는 공간으로 시민에게 문을 열었을 뿐, 그 때 그 지붕들은 그대로이다.
칠십 년대에 집을 지어 이 동네에 이사를 들어왔다는 할머니는 "여기가 그 때에는 대전에서 제일 비싼 동네였어. 사는 사람도 모두 공무원 아니면 대학교수들이고. 우리 바깥양반도 공무원으로 정년 했어" 하고 소리를 높였다.
테미 공원을 중심으로 본 동네는 흥망성쇠가 뚜렷했다. 할머니의 말처럼 서구지역이 개발되기 전 1980년대까지 이곳은 지명처럼 크게 흥한 동네였다. 나는 그 정점을 찍고 내려온 동네의 고적함에 반했다.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저무는 노을을 벗 삼아 올라왔던 길을 내려왔다.
그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을까. 갤러리를 하겠다고 뜬금없이 결심한 날, 이 동네가 떠올랐다. 그렇게 오 년 전 갤러리를 열고, 기어코 몇 달 전 대흥동 주민도 되었다. 갤러리를 연 이후 재개발 열풍이 이곳에도 왔다. 평균 칠십 대인 것만 같았던 골목길 유동인구도 '테미오래'라는 문화프로그램이 생긴 때문인지 많이 낮아졌다.
그래도 아직 테미공원 아래 아파트는 들어서지 않았고, 골목길은 여전히 고적하다.
이사 온 지 한 달이 지났다. 동네 사람들과 새벽 인사를 나누고 골목길을 걸으며 짧은 몇 마디를 주고받는다. 저녁이 되면 막걸리 한 잔 하자며 전화를 건다. 목을 축이고 돌아오는 길은 오래 전 그랬던 것처럼 언덕을 올라와야 한다. 아직 눈을 만나지 못했지만 소읍을 걷는 기분이다. 흥이 올라 노래 한가락 흥얼거리면, 크게 흥할 것이라는 동네 이름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새벽마다 담장 안으로 가지 친 옆집 감나무의 홍시 하나를 주워 입에 넣고, 감나무 주인 할머니와 안부 인사를 나눈다. 젊은 사람이 늘어났어도 아직은 노인이 대부분인 동네라서 날씨 얘기 아니면 병원 다녀온 이야기다. 남의 집 숟가락 몇 개까지는 몰라도 아픈 사정은 알아준다.
도시 생활에 익숙해져 이웃과 왕래를 하는 것을 번거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었지만, 때맞춰 남의 집 대문에 밤이나 감을 한두 개 걸어두고 가는 할머니들을 보면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곳에 둥지를 튼 일이 행운 같다.
여기에 문화예술거리를 만들겠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예전부터 있었던 이야기라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요즈음 하는 것을 보면 제법 일이 진전된 모양이다. 젊은 사람도 동네에 늘고 대흥동 이름에 걸맞는 일이 될지도 모르고 꼭 동네에 좋기만 한 일 같은데 나는 주민 참여 없이 밀물처럼 들어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다른 원도심 재생사업이 떠올라 좋지만은 않다. 그냥 이대로 자연스럽게 봄이 오면 테미공원에서 벚꽃을 보고 창작센터와 테미오래에서 미술작품과 작가를 만나고 여름과 가을 길목에서 수도산 나뭇잎을 보았으면 좋겠다.
관광지로 흥하는 대흥동大興洞이 아닌 문화예술과 도심 속 자연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대흥동이 되길, 이사 온지 한 달밖에 안 된 동네 사람의 바람을 이 가을 골목에 떨어진 낙엽들을 보며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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