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권혁대 생전 모습(권혁대 페이스북) |
'혁대형 죽었다네' 신재민 대전하나시티즌 경기장기획운영실장이 보낸 짧은 SNS를 한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대전하나시티즌의 전신 대전시티즌 서포터의 큰 형님이자 1호 서포터로 시민구단 대전시티즌의 이미지를 기획했던 권혁대 전 대전시티즌 홍보팀장이 지난 5일 5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기자에게 K리그와 대전시티즌을 알려줬고, 언론인으로의 삶을 열어준 내 인생의 1호 멘토였던 그의 죽음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제발 장난이기를 바랬지만, 전화기 넘어 들려오는 신 실장의 한숨 소리가 그가 떠났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
권 팀장을 처음 만난 건 20년 전 2002한일월드컵 직후였다. 당시 기자는 대전시티즌 서포터 퍼플크루를 주제로 세미다큐를 찍고 있었고, 권 팀장은 대전시티즌 마케팅팀 대리를 맡고 있었다. 그에 대한 첫인상은 말 그대로 강렬했다. 건장한 체구와 까무잡잡한 피부, 조폭 영화에 나올법한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였다. 그렇게 서포터와 구단 직원으로 시작된 인연은 이듬해 업무 파트너로 이어졌다. 기자가 만든 짤막한 축구 영상을 본 권 팀장은 시티즌의 홍보영상을 만들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고 한참 축구에 대한 재미에 빠져있던 기자는 고민 없이 수락했다.
권 팀장이 영상을 기획하면 기자가 시나리오를 쓰고 영상으로 만들었다. 시정 홍보물로 가득했던 대전월드컵경기장의 전광판에 시티즌만의 영상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권 팀장과 가장 많은 일을 했던 2003년 당해는 시티즌의 최고 전성기였다. 만년 꼴찌였던 시티즌은 홈경기 승률 70%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만들어갔고, '축구특별시'라는 애칭을 얻었다. 관중들이 늘어나면서 홍보팀 직원들도 바빠졌다. 기자 역시 매 경기 다른 주제의 영상을 만드느라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았지만,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팬들을 보며 감히 힘든 내색을 할 수 없었다.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교통비도 안 되는 보수에 권 팀장은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그러면서 시티즌이 K리그 최강의 자리에 오를 때 챙겨주지 못했던 것을 다 갚아주겠다는 말도 항상 덧붙였다. 기자가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중도일보에 입사했을 때 그는 구단을 떠나 열기구 사업가로 변신해 있었다. 사무실에서 반갑게 맞아주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일반 팬으로 돌아가 여전히 시티즌을 응원했다. 이듬해 권 팀장은 기자를 축구장이 아닌 하늘로 초대했다. 그가 직접 운전했던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날면서 나눴던 축구 이야기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축구를 사랑했던 그는 직접 만든 대전시티즌 엠블럼과 머플러 유니폼과 함께 한 줌의 흙이 되어 땅에 묻혔다. 늘 혼자였던 나에게 축구와 친구들을 만들어준 혁대형, 몸은 함께하지 못하지만, 마음속으로 영원히 시티즌을 응원할게요. 형과 함께 보냈던 지난 시간 평생 간직하겠습니다. 보고 싶어요 혁대형.
P.S 재민이하고는 안 싸우고 사이좋게 잘 지낼께요 걱정마세요
금상진 기자 jod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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