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 厚(두터울 후) 顔(얼굴 안) 無(없을 무) 恥(부끄러울 치)
출처 : 서경(書經) 오자지가(五子之歌)편, 시경(詩經)교언(巧言)편
비유로는 다른 사람의 처지는 몰라라하고 자기가 한 말과 행동에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를 말함.
동양철인들이 일반인들에게 던지고자하는 주제 중 인간의 가치를 언급할 때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우선으로 한다.
인류최고 스승이라는 공자(孔子)도 논어(論語)의 위정(爲政)편에서 무치(無恥)로 백성을 인도하는 위정자들을 경계(警戒)하고 있다. 또한 공자의 학통을 이은 맹자(孟子)는 더욱 부끄러움을 강조하며 사람이 스스로 돌이켜보아 올바르다면(부끄러움이 없다면)천만 명 앞에라도 당당히 나갈 수 있다.(自反而縮 雖千萬人 吾往矣/자반이축 수천만인 오왕의)라고 했다,
그리고 군자삼락(君子三樂)을 언급하면서 '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仰不愧於天/앙불괴어천), 구부려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이 없는(俯不?於人/부부작어인)'것이 군자의 두 번째 즐거움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중국 하(夏)나라 계(啓)왕의 아들 태강(太康)은 왕으로서 백성들을 돌보지 않고 사냥만 하다가 이웃나라 왕에게 쫓겨나 비참하게 죽었다. 그래서 그 형제들은 나라를 망친 형을 원망하며 번갈아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 중 막내가 부른 "만백성들은 우리를 원수라 하니 우린 장차 누굴 의지할꼬. 답답하고 서글프다. 이 마음, 낯이 뜨거워지고 부끄러워지구나."에서 나온 말로 어리석은 임금을 풍자했는데 다섯 번째 장(章)에 생황(피리) 불 듯 교묘한 말은 얼굴도 두텁구나(巧言如簧 顔之厚矣)' 곧 뻔뻔스러워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을 후안무치(厚顔無恥)라 한다.
위에서 지적한 대로 논어를 통해 공자는'免而無恥(면이무치')라는 말로 교훈을 주셨다. 곧 "백성들을 법으로써 인도하고, 형벌(刑罰)로만 다스리면 백성들이 형벌은 면할 수 있으나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道之以政 齊之而刑, 民免而無恥)"고 가르친다.
이는 철면피(鐵面皮 : 얼굴에 철판 깔았다)나 인면수심(人面獸心 : 인간의 얼굴을 하고 짐승의 마음씨를 가졌다는 뜻으로, 사람이지만 사람 같지 않은, 아니 사람이 해서는 안 되며, 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사람에게 붙이는 말), 또는 요즈음 많이 회자(膾炙)되는 '내로남불'과 비슷한 뜻이 될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이 이룩한 근대화라는 한강의 기적은 세계가 인정하는 성과이자 개발도상국의 성공모델이 되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공사(公私)를 구분 못하는 사리사욕과 자기 위주의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소모적인 정쟁(政爭)에 몰두하여 선진국으로 가고자 하는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으며, 부(富)와 권력이라는 불합리의 '덫'에 걸려 선진국이란 존칭의 대상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기억에서 지우고 싶을 만큼 엄청난 불합리로 인해 감내하기 힘든 시련을 겪고 있는 이런 와중(渦中)에도 타인과 전체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안중(眼中)에도 없고, 오직 자신들의 욕망이나 정쟁(政爭)에만 몰두하는 정치 지도자들의 후안무치(厚顔無恥)한 행태(行態)를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현실에 아마 국민적 분노는 폭발할 것 같다.
지금 우리는 국제사회와의 교류 없이는 선진화가 불가능하다는 교훈을 충분히 경험했다. 그러므로 이제 선진화 진입의 열쇠인 '부끄러움을 아는' 정신이 생활 속에 깊숙이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선비문화에도 '자녀를 보면 부모를 알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부모는 형체(形體)이고 자녀는 그림자이다. 형체가 바르면 그림자도 바르고 형체가 바르지 못하면 그림자 또한 바르지 못하다(父母者形 子女者影 形正則影正 形不正則影不正/부모자형 자녀자영 형정즉영정 형부정즉영부정)는 것이다.
모든 국민은 지도자를 보고 따라간다. 그 지도자가 올바르지 못하면 국민들도 자연히 사기와 불법이 마치 자랑인 것처럼 행하게 된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스스로 냉정을 되찾아 바르게 생각하고 진정으로 행동하는 정치지도자들의 올바른 정치적 환경을 조성해 나가는데 지혜를 모아갔으면 좋겠다. 자신이 한 일은 그 결과가 자연히 드러나는 것이므로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후안무치의 행태를 보여서는 안 된다.
아무튼 우리는 이 시대 인간에게 요구되는 '부끄러움을 아는' 생활을 정신 속에 뿌리내리도록 하기 위해서는 잘못을 잘못이라고 보지 않거나, 잘못을 알고도 바로 시정하지 않거나, 남이 지적해준 잘못을 진실 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주변에 생기지 않도록 서로 배려하는 문화를 일상생활에서 확산시켜 나갔으면 한다.
매사에 걱정이 많고 염려하며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 미래가 어둡고 희망이 절망으로 바뀐다는 말을 되새겨 보면서 스스로를 믿고, 그 믿음 속에서 꿈을 꼭 이루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이번 대선후보 토론회의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실상을 보면서 정치인의 후안무치에 개탄을 금치 못하겠다.
看面人皆人 察心人惑獸 人人人不人 莫以面皮究(간면인개인 찰심인혹수 인인인불인 막이면피구) 얼굴만 보면 사람이 다 사람 같은데, 마음을 살펴보면 간혹 짐승인 사람도 있네. 사람 사람마다 사람답거나 사람답지 않으니 얼굴 겉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기를…… 조선시대 유학자 임광택(林光澤)선비의 풍자를 떠올려 본다.
장상현 / 인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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