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연세'라는 호칭을 들으며 이런 알바도 다 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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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공론] '연세'라는 호칭을 들으며 이런 알바도 다 해보고

서옥천/ 수필가

  • 승인 2021-10-11 10:04
  • 수정 2021-10-11 10:06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오랜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며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을 무렵 아는 동생의 전화가 왔다. 아르바이트하는 곳에 사람이 필요한데 함께 하자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지 듣고 보니 생소하기도 하고 다시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 부담되어 사양했다. 그러자 한시적으로 하는 일이며 알바비도 쏠쏠하다고 재촉하는 바람에 솔깃하여 결국 승낙하고 말았다.

알바 가는 길이지만 오랜만에 출근하는 마음이 설레임으로 새롭게 다가왔다. 좀 일찍 현장에 도착했다. 출근 시간이 되자 다양한 연령층의 아줌마들이 왁자지껄 줄지어 들어왔다. 심지어 대학생도 서너 명 있었다.

오늘 할 일은 신축 완공된 아파트에 입주 예정자들의 방문을 돕는 일이란다. 즉 '사전점검'이라고 하여 입주 전, 자기 집에 방문하여 어떤 하자나 문제점을 찾아내어 접수하는 것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필요한 여러 가지 교육을 받았다. 우리의 정식 명칭은"매니저"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쓸데없는 잡담 금지에 상냥하고 안전하게 안내하는 것은 기본임을 거듭 강조했다. 입주자가 데스크에서 간단한 서류 확인 절차를 밟는 동안 우리는 한걸음 뒤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절차가 끝나면 '제가 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라는 인사를 하고 동행한다. 현관문을 열어주고 명칭이나 그 방법 등을 좀 더 편안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안내하는 일이다. 이런저런 지침을 머리에 담고 '내가 모시고 갈 입주자는 어떤 분일까?' 기대감으로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첫 방문객은 인상이 선해 보이는 중년 부부에 직장인 느낌의 자녀였다. '축하드린다.'는 인사에 '얼마나 좋으시냐고?' 먼저 말문을 열었다. 감사하다며 가족 모두 입 꼬리가 올라갔다. 방법을 설명하고 한 번 더 '축하합니다. 좋은 꿈 이루세요.'라는 인사로 마무리한다. 주말이라 방문자가 꼬리를 이었다 이번엔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언니 내외와 학생인 자녀 둘까지 여덟 명의 대가족이었다. 가족 모두 새집에 들어서면서 환호성을 지르고 좋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진심을 담아 축하의 말을 전하니 아파트는 처음으로 어렵게 장만한 속내를 짧게 내비치기도 했다.



나도 오두막집에 살아본 적도 있고,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한 경험도 있었기에 그 기분이랄까 감동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젊은 부부든, 연로하신 분이든 진심이 담긴 축하에 말을 전하며 한눈팔지 않고 하다 보니 힘들지 않고 행복한 일이었다. 하루 일을 마칠 무렵, 동행한 일지를 제출하고 퇴근을 기다리는데 담당자가 오더니 내 이름을 부른다. 놀란 마음으로 손을 반쯤 들었더니 알았다면서 퇴근 명령이 떨어졌다. 다들 퇴근하느라 정신없는데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담당자에게 찾아갔다. 실장이라고 했다.

'좀 전에 혹시 제가 뭐 잘못한 일이 있었는지요?'

"아닙니다. 다른 매니저들 보다 동행 횟수가 서너 건 정도 많고 메모도 꼼꼼하게 잘 하셔서…… 어느 분인지 확인한 겁니다. 아무튼 수고하셨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이렇게 실장과 인연이 시작되었다. 일 있을 때마다 연락을 주고, 하물며 다른 현장에 소개까지 해 주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너무나 감사하여 몇 차례 식사하면서 나보다 열네 살 연하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으며 호칭도 자연스레 언니로 바뀌었다.

"언니도 기초안전 보건교육을 받아보라"는 것이다. 이유인즉 이수증이 있으면 고액인 '품질검사'도 할 수 있으며 예전엔 전문가들이 했지만, 요즘엔 일차적으로 우리 아줌마들이 한다는 것이다.

교육을 이수한 후 소개를 받아 현장에 도착하고 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뿌연 먼지는 물론, 현장 곳곳에 무엇인지도 모를 각종 건축자재가 엄청났다. 철근 절단할 때 나는 강한 기계음은 귀 고막이 찢어질 듯했다. 안전모를 쓰고 형광조끼에 안전화까지 착용한 나의 모습이 낯설었다. 어느 세대에 단체로 들어가서 전문가로부터 하자 찾아내는 법을 설명 듣는다. 사전점검을 여러 번 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건축 용어들이 어색하지 않아 마음이 놓였다. 우리는 2인 1조가 되어 배정받은 동으로 출발했다.

세대 안에서는 작업자가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데 불쑥 들어가니 서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어느 땐 "호이스트"라는 도르래를 타고 외벽으로 이동하는데 그야말로 간이 콩알만 해짐을 느낄 정도였다. 철근 콘크리트의 삭막한 건물이 전문가의 기술과 작업자의 수고로움을 더하여 속속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의 보금자리로 완성되어 가는 것이 놀라웠다. 내 집이라 생각하고 매의 눈으로 열심히 찾으며 28층까지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면 땀방울이 뚝뚝 하루해가 짧았다.

오늘 현장은 33층까지 있는 곳이다. 사오십 대로 보이는 열 명의 점검원이 대기하고 있는 출입문이 열리더니 안전모를 쓴 여성이 들어왔다. 나이가 지긋한 것도 아니고 젊고 예쁜 그 여성은 본인을 부장이라 소개하면서 간단한 인사와 함께 오늘 일정과 작업 방향에 관한 설명을 하고 이런저런 당부의 말로 끝을 맺었다. 서류를 넘기면서 둘러보더니

"서옥천 씨! 어느 분이세요?"

나를 호명하는 것이다. 예상 밖의 상황에 어리둥절한 나는 엉겁결에 엉거주춤 일어섰다. 흘깃 쳐다보더니 "연세가 좀 있으셔서"라고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아니 연세라니 내가 벌써 연세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나? 하긴 '이순'을 넘겼으니 당연한데 왜 이렇게 얼굴이 화끈거리지? 청천벽력은 아닐지라도 무슨 봉변을 당한 것처럼 기가 팍 죽었지만 나 역시 미소를 지으며 "연세가 많아서 죄송합니다. 집으로 갈까요?"라고 했더니 부장과 젊은 아줌마들의 짧은 웃음이 터졌다. 부장의 이어지는 말은 "웃으시라고 드린 말씀이니 신경 쓰지 마시고, 일 잘한다기에 연세 무시하고 출근하라 했습니다. 우리 함께 열심히 해봅시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럼 그렇지!' 순간 졸였던 마음이 확 풀렸다.

안전모 쓰면 금방 망가질 희끗희끗한 머리에 한껏 모양을 내고 나는 오늘도 현장에 간다. 이 나이에도 일할 수 있다는 즐거움으로 사뿐사뿐 발걸음이 가볍다.

'연세' 라는 호칭을 들으며 이런 값진 일도 다 해보고.

서옥천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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