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달변(達辯)보다 강한 눌변(訥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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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달변(達辯)보다 강한 눌변(訥辯)

양동길 / 시인, 예술가

  • 승인 2021-10-08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한때 유명인 강의 녹음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강의 영상물이 많다. 특히 몇몇 종교인 강의 내용이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다. 필자 역시, 많은 카세트테이프를 접할 수 있었다. 어떤 것은 내용이 좋아 수차례 반복해서 듣기도 했다.

어린이 교육과 관련된 것이 있어, 내용을 거의 암기할 정도로 반복하여 들었던 것도 있다. 교회 부흥회 설교 테이프라서 신앙생활과 결부된 내용이었다. 인상적이었던지,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는 것 중 하나가 기도할 때 중언부언(重言復言)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입에 발린 소리를 반복적으로 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신앙인이 아니다 보니 기도해본 일은 거의 없다. 남의 기도를 주의 기울여 듣기는 한다. 듣다보면 천편일률적인 경우가 있다. 일정한 틀에 담아 막무가내로 흉내 내는 경우도 본다. 주문처럼 되풀이하기도 한다. 별 내용이 없으면서 말만 많아지는 것도 포함된다.

말 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은 누구나 경계해야 할 일이다. 삼간다고 하지만, 그 경계를 넘어서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떻게든 설득해 보겠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리라. 욕심이 앞서다보니 표현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어지러워진다. 잘못이 깊어지면 아예 전하려는 내용까지 사라진다. 욕심을 버려야지 다짐한다. 욕심을 버리면 간결해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일상적이거나 반복한다고 무조건 잘 못이라 할 수는 없다. 감사, 사랑, 칭찬, 배려, 공감 등은 할수록 관계가 두터워진다. 습(習)이 성(性)이다. 반복하다 보면 그 사람의 성품이 된다. 사랑의 인간, 공감의 인간이 되는 것이 어찌 나쁜 일인가? 말이 씨가 된다. 농가성진(弄假成眞)이라 하지 않는가? 장난삼아 한 말이 참을 이루어내기도 한다. 결국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쓸모없거나 해서는 안 될 말까지 중언부언하지 말자는 것이다.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다. 불가에서 망집(妄執)이라 하던가, 망상을 버리지 못하고 집착한다. 망령된 고집이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은 물론이려니와 정당하고 진실 되다 하더라도 반복할 필요는 없다. 뿐인가? 사소한 일, 허황한 일에 고집 피우고 매달린다. 심지어 목숨까지 걸기도 한다. 그 결과, 낭패 보기 일쑤다. 생각의 차이, 관점의 차이는 항상 존재한다.

망집은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것이다. 혹, 말을 잘하고 싶다면 남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잘 들어야 말을 잘 할 수 있다. 대화의 기술이기도 하다. 두 번 듣고 한 번 말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은 일방적인 말이지만, 글 역시 경청이 바탕이다. 자신의 사고에 갇혀 있으면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 더욱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귀가 지나치게 엷어도 문제다. 엷다는 말을 듣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던데, 여기서는 '팔랑귀'를 의미한다. 남의 말에 줏대 없이 지나치게 잘 흔들리는 것이다. 경험이 부족하거나 몰라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많이 알고 경륜이 쌓여도 그럴 경우가 있다. 자기 꾐에 넘어간다고나 할까? 비판과 분석력이 떨어진다고 할까? 망각한다고 할까? 어쨌든 어리석을 정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귀명창이라는 말이 있다. 명창에 버금갈 정도로 소리를 잘 이해하고 감상 할 줄 안다는 말이다. 주위에서도 흔히 보게 된다. 교육차, 자녀 뒷바라지하는 부모가 수십 년 듣고 접하다보면 절로 전문가가 된다. 비록 입은 떨어지지 않고, 누가 인정해 주지 않더라도 분명 전문가다. 음악뿐 아니라 모든 예술 분야가 대동소이 하리라. 다만, 그 전문성이 작품이나 작가의 저평가, 비난에 이용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일종의 편견, 확증편향 아니겠는가? 세상은 하나하나가 천차만별이요, 과정에 놓여 있다. 진정한 전문가는 그 과정도 이해한다. 나아갈 방향도 안다. 그만이 가지고 있는 독자성, 차별성, 창의성, 예술성을 발견한다. 진정한 전문가의 힘이다.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은 특히 주의하여야 할 경계 대상이다.

흐르는 물처럼 막힘없이 말을 잘하는 달변보다, 서툴게 더듬거리는 눌변(訥辯)이 더 감동적일 수 있다. 마음이 담긴 말이다. 침묵은 금이라 하지 않았는가? 말 없는 것이 웅변보다 더 상대를 감화시킬 수 있다. 마음이 담긴 말이 그 다음 아닐까? 굳이 말하고자 한다면 진솔한 마음이 담긴 말을 하자, 다짐해 본다.

말의 성찬 시대다. 거짓은 아니겠지만, 말장난이 심하다는 생각이다. 진심어린 말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고, 겸손한 말에 박정 할 리 없다. 결단코 말이 많다고, 잘 한다고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근심하고 있으면 무엇 하랴, 행하지 않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것을 바꾸는 것 또한 마음이 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변화 시킬 수 없는 사람은 어떠한 것도 변화 시킬 수 없다."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이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210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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