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의 고향 강릉은 초당 두부로 유명하다. '초당'은 허균의 아버지 허엽의 호다. 초당 두부는 허엽이 동해의 맑은 물로 간을 맞춰 만들어 먹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그 두부 맛이 소문 나 마을 이름을 아예 초당이라 붙였다고 한다. '초당할머니순두부' 식당은 역사가 40년이 됐다. 국산 콩과 바닷물 간수로 매일 아침 두부를 만들어 판다. 점심으로 먹었는데 째복(비단조개)을 넣고 끓인 얼큰째복순두부를 국물 하나 안 남기고 뚝배기 바닥을 박박 긁어 먹었다. 식품회사에서 만든 순두부는 푸딩처럼 미끈덩거려 씹는 느낌이 없다. 이 집 순두부는 고소하면서 몽글몽글한 것이 톱톱한 질감이 있었다. 얼큰하고 뜨끈한 순두부를 줄줄 나오는 콧물을 훌쩍거리며 퍼먹었다.
예전엔 명절이 오면 집에서 으레 두부를 만들었다. 농사지은 콩으로 넉넉하게 만들어 윗집, 아랫집에도 나눠주곤 했다. 그런데 두부는 만드는 품이 꽤 든다. 물에 불린 콩을 맷돌에 갈아서 천으로 된 자루에 넣어 꼬옥 짠 콩물을 가마솥에 넣는다. 그걸 오랜시간 뭉근히 끓이면서 엄마는 간수 넣은 대접으로 콩물을 떠 살살살 흔들어 순두부를 만드는 것이다. 하여간 하루종일 두부 만든 기억이 생생하다. 어린 나는 두부를 안 먹었다. 허연 것이 아무 맛도 안 나는데 왜 이렇게 힘들게 엄마는 두부를 만들까 이해가 안됐다. 이제 나이를 먹어 겨울이면 무릎이 시리네, 골다공증이 오네 하다보니 열심히 두부를 먹는다. 또 맛있기도 하고.
두부를 좋아한 부친처럼 허균도 두부를 좋아했을까.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나선 허균은 전국에서 나는 별미를 먹어보는 복을 누렸다. 허나 타고난 식복과는 달리 허균의 삶은 평탄하지 못했다. 진보적인 사상과 거침없는 행동으로 권세가들의 눈밖에 나기 일쑤였다. 허균은 체면을 중시하는 사대부들과 엄격한 유교윤리에 염증을 느껴 서자와 천민 출신 예술가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이깟 놈의 세상에 침을 퉤 뱉으며 박차고 나가 율도국을 건설한 홍길동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식욕을 억제해야 한다는 성리학의 주장을 부정한 허균의 식탐은 완고한 사회통념을 조롱한 행위 아니었을까.
후식으로 순두부젤라또를 달게 먹고 바닷가 백사장으로 달려갔다. 낮게 드리운 잿빛 구름 아래서 동해의 일렁이는 파도가 으르렁거렸다. 철썩철썩 쏴아. 쉬지 않고 무섭게 달려드는 파도가 아가리를 쩍 벌리고 허연 송곳니를 드러낸 맹수 같았다. 드넓은 바다를 넋 놓고 바라보며 인생사가 이런 건가 싶었다. 저 파도에 부딪쳐 앞으로 나아가거나 뒷걸음질 치며 물러나거나. 역동적인 파도에 몸을 실어 거친 물살과 함께 리듬을 즐기는 서핑이 멋져 보일 때도 있다. 환멸을 겪은 뒤에도 희망이 꿈틀거리다니.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허균은 검푸른 바다를 응시하며 바다 속 진미를 떠올리면서 입맛을 쩝 다시겠지? <지방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