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태 한국무역협회 대전세종충남지역본부장 |
이후부터 내 인생은 달라졌다. 뚜벅이에서 벗어나 조금씩 데이트의 범위를 넓혀서 마침내 다음 해 결혼에 골인했다. 결혼 후 아이가 태어나서 ‘애마’로 공원, 마트 등에도 같이 가고 여행도 다녔다. 이런 꽃길을 달리는 도중에 험로와 맞닥뜨리기도 했다. 초보 시절 교차로에서 좌회전하다가 바뀐 적색 신호에 얼떨결에 멈추는 바람에 교통경찰로부터 경찰청 발행 금융 상품권(범칙금 통지서)을 받았는가 하면, 신호대기 중에 대형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에 들이받혀 2주 동안 병원 신세를 진 적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일반 도로가 정해진 트랙을 고속으로 질주하는 포뮬러1 경기장보다 더 위험하다고 느낀다. 한 달 전에 갓 면허를 딴 왕초보 운전자부터 눈감고도 운전할 수 있는 베테랑까지 별다른 등급 표시 없이 함께 달리는 도로이기 때문이다. 방향지시등도 켜지 않은 채 갑자기 끼어들거나 3개 차선을 한꺼번에 넘나드는 등 몰상식한 행동을 한 상대 운전자를 욕하며 가슴을 쓸어내린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는 "인생은 문제 풀이의 연속이며, 최선의 선택보다 최악의 회피가 더 중요하다"고 했는데, 자동차 운전은 긴장의 연속이며 최악, 즉 중대 사고를 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해외 출장을 가면 현지의 교통 체계를 유심히 봤다. 그 결과 교통 문화는 국가의 발전 단계와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중국과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알제리 등 신흥 개발도상국에서는 먼저 가려는 욕심에 신호를 무시하고 머리부터 들이미는 차들이 많았고 끊임없는 경적 소리에 귀가 아플 정도였다.
독일과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교통망이 잘 갖춰져 있고 방향지시등을 넣으면 대부분 양보를 해줬다. 가끔은 우리나라보다 나은 점을 동남아에서 발견하기도 했다. 베트남 하노이, 미얀마 양곤에는 교차로 신호기에 신호등이 바뀔 때까지 남은 시간을 초 단위로 표시해주는 보조장치가 붙어 있었다. 네거리에서 멈춰야 할지 속도를 높여 지나가야 할지 고민하게 하는 딜레마 존에서 운전자의 결정을 도와주는 장치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차를 몰면서 자동차 운전과 기업 경영이 서로 닮은 점이 많다는 걸 느끼곤 한다. 목적지(수출 등 매출 달성)에 제시간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과속이 아닌 범위에서 속도를 높여 앞차(국내외 경쟁기업)를 추월해야 하고, 전방의 교통사고(불량품 발생 등)를 인지하면 비상등을 켜고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멈춰야 할 때(공정 개선)도 있다. 차량(회사)에 고장이 나고, 정지신호가 떴는데도(긴박한 여건 변화) 무시하고 달리다가 대형 사고로 폐차(폐업)될 수도 있다.
자동차는 세계를 누비는 바퀴 달린 국기라고 한다. 자동차를 기업에 대입하면 기업은 좋은 성능의 차(제품 및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정부와 국회는 기업, 곧 자동차가 힘차게 깃발을 날리며 달릴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잔여 시간 표시장치를 설치(적절한 지원정책으로 불확실성 해소)해 딜레마 존을 안전하게 통과하도록 도와야 한다. 도로 군데군데에 싱크홀(애로사항)이 생기면 바로 보수하고 차선이 희미해지면 새로 페인트를 칠하는 것도 필요하다.
최근 대전무역회관 앞 네거리 도로를 말끔하게 포장했다. 기분도 좋고 운전하기도 편하다. 초행길 고속도로를 운전할 때 빠져나갈 곳을 미리 알려주는 분홍색 유도선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런 지원과 함께 중대 재해 처벌법 등 달리지 못하도록 타이어에 바람을 빼는 각종 법률과 규제는 보완하거나 폐지해 기업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외부 요인으로 가속페달을 힘껏 밟지 못해 종착지까지 저속으로 털털거리며 달리다가 중도에 멈출까 봐 두렵다. /김용태 한국무역협회 대전세종충남지역본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