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선 교수 |
5월 21일 새벽, 총소리를 들었다. 날이 밝았다. 광주역에서 총을 맞아 죽은 청년들의 시신이 트럭에 실려 있었다. 도청 앞에서 군인들의 집단 발포가 있었다. 태극기를 든 맨손으로는 조준해서 쏘는 군인들의 총알을 막아낼 수 없었다. 송원고 2학년 김기운을 비롯한 시민들이 군인들의 총에 죽었다. 병원마다 죽거나 부상 당한 시민들의 피로 흥건했다. 다른 시민의 죽음을 보고, 자신의 목숨을 내건 시민들이 무장을 시작했다. 필름을 모두 소진했다. 취재한 자료를 방송하지 않고 머릿속에 넣어 다니는 것은 언론인의 할 일이 아니었다. 군부의 잔인한 폭력을 세상에 알려야 했다. 어렵사리 검문을 거쳐 밤 11시 서울에 도착했다.
5월 22일 오전 일본 나리타공항으로 갔다. 그가 촬영한 영상은 공항에서 바로 독일로 공수되었다. 그날 저녁 독일의 공영방송 ARD는 광주민주항쟁을 영상 보도했다. 나준영 MBC 영상기자의 논문에 따르면, 5월 19일 저녁 8시 'CBS Evening News'에 서울지국 유영길 영상기자가 촬영한 ‘오월광주’ 영상이 세계 최초로 보도되었다. ABC서울지국 최광태 영상기자 등 취재팀은 5월 20일 오전 상황을 카메라에 상세하게 담았다. 5월 21일 밤 일본 NHK는 CBS 유영길, ABC 최광태 등이 취재한 영상을 편집해 ‘오월광주’를 보도했다. 독일로 영상필름을 보낸 그는 나리타공항에서 3시간을 머문 후 서울로 돌아왔다. 가택 연금된 김영삼의 상도동 자택을 영상 취재했다. NHK 영상물에 취재 중이던 그의 모습이 남아 있다.
5월 23일 그는 다시 광주로 떠났다. 저널리즘에 투철한 기자의 영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의 영상은 거짓을 진실인양 왜곡하고 짜깁기 편집한 한국 언론의 부끄러운 자취를 비추는 준거였다. 그는 촬영한 자료를 다시 독일 방송사로 보냈다. 5월 27일 취재를 위해 세 번째 광주에 갔다. 그해 9월, 그는 동료와 함께 <기로에 선 한국>이라는 광주민주항쟁 다큐를 제작해 방송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취재하다 경찰의 곤봉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2016년 영면에 들었다. 그의 신체 일부는 생전의 바람대로 광주 망월동 묘역에 묻혔다.
그의 이름은 ‘위르겐 힌츠페터’. 목숨을 걸고 광주민주항쟁을 국제사회에 알린 그의 저널리즘 정신을 기리는 상이 마련되었다.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이다. 전 세계 영상기자들을 위한 첫 국제보도상이다. 한국영상기자협회가 오래전부터 공을 들여 제정했다. 5·18기념재단과 함께 한다. 대상은 그의 다큐멘터리 이름에서 따온 '기로에 선 세계상'이다. 뉴스 등 3개의 경쟁부문과 특별한 공로를 인정해 수여하는 '오월 광주상'을 수여한다.
올해 제1회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에는 13개 국가에서 25개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벨라루스 영상기자 아르신스키가 대상을 수상했다. 그는 체포와 구금을 겪으면서도 벨라루스 정부가 야당 후보들에게 자행한 선거방해 과정을 취재 보도했다. 두 명의 미얀마 영상기자들이 뉴스부문 수상을 했다. 시상식은 10월 말에 열린다.
힌츠페터를 세상에 알린 KBS 장영주 피디, 국제보도상 제정을 위해 고군분투해 온 한원상 공동위원장, 나준영 영상기자협회장의 이름을 빠트릴 수 없다. 광주민주항쟁의 진실을 찾아 복원하고, 전 세계 영상기자들과 연대해 민주주의와 인권, 정통의 저널리즘에 복무하려는 한국 영상기자들의 특별한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기록하는 영상기자들이 존재하는 한, 더러는 더디고 막히더라도 결국 시간은 진실의 편이다. 눈 뜬 시민도 진실의 편이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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