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에도 나와있지 않은 '유등천유래비', 블로그에서 겨우 찾아
뿌리공원 너머의 유등천, 자연 그대로의 모습 담아
대전 중구 안영동 뿌리공원네거리 인근에 있는 '유등천 유래비' 신가람 기자 shin9692@ |
유등천에도 유래비가 있다는 선배의 말을 듣고 부랴부랴 포털사이트를 수소문했다. 게으른 제2의 자아가 들이닥쳤다면 출발 직전이 돼서야 유래비가 어디 있는지 검색해 찾았겠지만, 이날은 사전 조사를 미리 해둬 유등천 유래비가 있는 주소를 일찌감치 알아뒀다.
다행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장소에 관해 지도 검색으로 전부 찾아냈지만, 포털사이트나 지도 어플리케이션에도 '유등천 유래비'라고 치면 '검색결과가 없습니다'라는 당황스러운 문구만 볼 수 있다. 그래도 명색에 지역 3대 하천의 유래비인데,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에 있는 정보로 주소를 찾아야 하는 현실은 씁쓸하기도 했다.
사전에 조사한 주소(중구 안영동)로 찾아가 두리번거리니 유등천 유래비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주소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잠깐 쉬어갈 수 있는 정자가 보였고, '유등천 유래비'는 바로 그 옆에 있었다. 유등천 유래비가 있는 곳은 안영교를 접하는 뿌리공원 네거리 인근에 자리 잡고 있다. 근처에는 지역의 대표 명소인 뿌리 공원도 있지만, 바래진 유래비의 흔적들을 보고 있으니 홀로 외로워 보였다.
유등천 유래비를 벗 삼아 이곳을 기준으로 곧바로 유등천을 따라 뿌리공원 방향으로 걷기를 시작했다. 사실 이날은 유등천 인근의 문화재를 찾아 나서려고 했지만, 문득 뿌리공원 너머의 유등천 모습이 궁금해 즉흥적으로 주제를 바꿨다.
유등천을 끼고 있는 뿌리공원의 모습 신가람 기자 shin9692@ |
뿌리공원 너머의 모습을 궁금해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번 자전거를 타고 와도 뿌리공원에서 다시 방향을 틀어 되돌아갔고, 뿌리공원을 넘어 계속 가려고 해도 이어지는 길찾기에 매번 실패했다.
이날은 작정하고 휴대폰으로 실시간 현 위치까지 보며 유등천을 낀 뿌리공원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뿌리공원의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하고 유등천을 따라 길이 난 곳을 따라가니 어느새 주위에는 여치 울음소리만 들리기 시작했다.
뿌리공원을 등에 지고 유등천을 따라 걸은 적은 처음이었다. 가끔가다 저 멀리 사람이 보이면 반가울 정도로 주위에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걷고 있는 길이 사람이 있어도 되는 길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뿌리공원 내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유등천의 모습도 장관을 이룬다. 신가람 기자 shin9692@ |
뿌리공원 너머,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유등천 모습 신가람 기자 shin9692@ |
갑천과 대전천이 갈라지는 구간부터 뿌리공원까지 그동안 보았던 유등천의 모습은 사람들의 활기로 가득 찼다면, 뿌리공원 너머 유등천의 모습은 정적미를 물씬 풍겼다.
포장하나 돼 있지 않은 길이었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이런 유등천의 모습이 더 정감있게 다가왔다. 어느 순간부터 도시의 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되자 슬며시 이어폰을 빼고 유등천 물소리와 자연의 소리를 귀에 담기 시작했다. 어느새 1시간쯤 걸으니 침산교가 보이는 시점부터는 유등천이 다시 구완천(舊完川, 무수동에서 발원해 유등천으로 합류하는 하천)과 갈라지기 시작했다. 구완천과의 만남은 아쉬움으로 달래고 다시 유등천 비포장도로를 곧이곧대로 걷기 시작했다.
침산교를 지나 유등천을 따라 걸으면 곳곳에는 벼가 익은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다. 신가람 기자 shin9692@ |
사람들이 제철 음식을 찾듯 경치에도 그 시기가 주는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이 시기에는 벼가 그렇다. 좌측에는 유등천이 흐르고 우측에는 노란 벼가 고개 숙이며 인사하니 반갑게 맞아주었다. 유등천을 제외한 다른 자연의 모습들에 이렇게 시선을 빼앗긴 적이 없었는데, 그렇게 새삼 가을이라는 손님이 작년에 이어 다시 찾아온 걸 실감했다.
중구 침산동 대전청소년수련마을까지 다다르면 그 인근에는 캠핑하는 지역주민들까지 쉽게 찾을 수 있다. 신가람 기자 shin9692@ |
걸어온길의 반대편 길은 나무데크로 잘 꾸며진 산책길이 조성돼있어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신가람 기자 shin9692@ |
침산교를 지나고부터 경치를 보며 천천히 걷다 보니 또 1시간 정도가 흘렀을까. 저 멀리 텐트가 보이고 캠핑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바로 옆에는 대전청소년수련마을(수련교)이 보였다.
한 청년이 계속 사진을 찍는 모습이 궁금했는지, 지나가던 어르신께서도 말을 걸었다. 안영동에서부터 걸어왔다고 전하자 어르신은 "아이고, 자전거 타는 사람이나 캠핑하는 사람은 봤어도 여기까지 걸어온 사람은 처음 봤네. 해가 지기 전에 돌아가. 해지면 여기 깜깜혀."
어르신과 기분 좋은 인사를 하고 그곳을 반환점 삼아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시 침산교부터는 지나온 길이 아닌 반대편에서 걸음을 시작했는데, 이곳은 또 나무 데크길로 잘 꾸며진 산책길을 조성해 이전 길과는 다른 매력을 선보였다. 듬성듬성 보이는 유등천의 모습을 따라 산책길을 걸으면 문득 벚꽃이 그리워졌지만, 아쉬운 대로 단풍을 기다리기로 한다.
이날도 계획했던 주제부터 일정까지 맞아떨어지는 것 없이 전부 틀어졌다. 이것도 이제는 익숙해진 탓인지, 손목시계를 차고 오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다. 계획이 전부 틀어지면 어떠한가. 가끔이라도 이렇게 유등천을 따라 기분 좋은 여행의 감정을 되살리면 이것보다 값진 시간이 또 있을까. 유등천=신가람 기자 shin9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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