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이 잠자야 하는 경우가 있다. 세상일이 싫으면 입을 닫아야 한다. 바라보지 않고 눈을 감아버린다.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외면이리라. 차마 보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술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 어쩔 수 없는 소극적인 저항이다. 이 경우 자도 자는 것이 아니리라. 외면한다고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런 심정을 중국 송나라 소동파(東坡 蘇軾, 1036 ~ 1101)가 시로 남겼다. 술에 취해서라도 세상이 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취수자(醉睡者)>라는 시다.
도가 있어도 행하지 못한다면 술에 취하는 것만 못하고 /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한다면 잠자는 것만 못하네 / 선생은 술에 취해 이 바위 사이에 잠들었는데 / 세상에 이 뜻을 아는 사람 없다네 (有道難行不如醉, 有口難言不如睡, 先生醉臥此石間, 世上無人知此意)
벼슬살이하던 소동파가 1065년 부인과 사별하고 아버지마저 여의자 상심이 컸다. 그 무렵 중앙정부는 정부 물자수급을 위한 균륜법(均輪法), 저리자금 융통하는 청묘법(靑苗法) 등 새로운 법의 적용으로 농민 생활이 피폐해졌다. 지방 근무를 자청하여 저장성(浙江省), 지금의 산둥성(山東省) 등에서 지방관을 역임했다. 정부 정책에 비판적이었던 동파는 고생하는 농민의 생활상을 시로 옮겼다. 이에 조정을 비방했다는 죄목으로 1079년 체포된다. 다행히 사형은 면했으나 100일간 옥살이에 단련부사(團練副使)로 좌천된다.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정해진 곳에 거주해야 한다. 요즘 말하는 가택연금이었던 모양이다. 1085년 철종(哲宗)이 즉위하며 복권되어 요직에 오르나. 다시 당쟁에 휘말려 좌천되어 혜주사마(惠州司馬)가 된다. 그뿐이 아니다. 하이난섬(海南島)으로 유배되어 비참하게 생활한다. 휘종(徽宗)이 즉위하면서 복직되어 상경하던 중, 큰 병을 얻어 창저우(常州)에서 66세의 생을 마감한다.
시의 내용을 이해해보려니 사설이 길어졌다. 인류는 평화를 원하지만, 평화는 없다. 국가 간 전쟁이 없으면 내분으로 싸우고, 그것마저 없으면 집단 간, 개인 간, 혈육 간에도 다툰다. 갈등구조로 보면, 개인의 내적 갈등부터 외적 갈등으로 번지는 심리적 갈등을 시작으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 운명, 자연 등이 끊임없는 갈등 관계에 놓여있다. 갈등은 대립을 낳고 대립이 진일보하면 싸움이 된다. 삶은 갈등이다. 결국, 갈등 해소를 위한 노력만이 평화 진작 방법이 된다.
윤두서(1668-1715) 작, 『하일오수(夏日午睡)』, 모시에 수묵, 32×25㎝, 해남 윤씨 종가 소장 |
잠든 사람이 어디에서 본 듯한 얼굴 아닌가? 넉넉한 얼굴과 턱수염, 기개가 넘치는 본인의 얼굴이다. '자화상'은 물론, '진단타려도(陳?墮驢圖)'에도 등장한다. 진단타려도는 조광윤(趙匡胤, 927 ~ 976, 송태조)이 송나라 왕이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박장대소하다 나귀 등에서 떨어지는 희이 진단(希夷 陳?, 872 ~ 989, 중국 오말송초의 도학자)의 고사를 그린 것이라면 하일오수는 소동파와 같은 심정을 그린 것이리라. 은둔하고 있으나 항상 세속 일이 자신을 어지럽게 하고 괴롭히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한다.
리듬감이 돋보이는 옷 주름이 범상치 않다. 맨발과 발치에 놓인 부채로 보아 여름날로 보인다. 의복을 제대로 갖추었으니, 모시나 삼베 옷이 아닐까? 옷 선과 달리 인체는 옅게 그렸다. 수목과 난간, 들마루, 많은 배경과 소도구가 등장하지만 퍽 자연스럽다. 눈 감고 갈등을 삭이는 모습을 위무하는 듯하다.
탁월한 재능과 포부, 꿈을 펼치지 못하고 기개를 접어야 하는 안타까운 심사가 담겨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누구에게나 그 기개를 발산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다. 이름을 얻어 무엇할까만, 즐거움의 하나는 되지 않을까? 싫다고 외면하지 마시라, 어디에든 마음껏 자신을 펼쳐보시라.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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