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가람 정치행정부 기자 |
"기자 아저씨, 기자를 하면 뭐가 좋아요?"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었지만, 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이 직업의 가장 좋은 점은 돈이나 사람 눈치 안 보고 살아도 돼요"
지난 55년간 기자로 생활하고 작년에 은퇴한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이 은퇴식에서 "기자로 사는 동안 아부 안 하고 돈 안 밝히고 살아서 좋았다"는 말과 맥락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삶의 단편적인 부분들이 엮여있어 초등학생들이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은 대답이었겠지만, 나름대로 인간사의 고해(苦海)를 알려주고 싶었다.
'기자' 두 글자가 박힌 명함을 들고 다닌 지도 벌써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여전히 언론계에서는 햇병아리지만, 매일 본인 기사에 대한 숙의를 즐기며 이 직업의 매력을 만끽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일러준 대로 남들 눈치 보지 않으며 어떤 누군가를 만날 때도 대등한 입장에서 업무에 집중할 수 있으니 이만한 직업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 보니 조직 내에서도 상하 개념이 없어져 어느새 남들 말 안 듣는 사고뭉치가 돼 있지만, 나는 사실 이 직업병을 애정한다. 인간이 어디 쉽게 바뀌겠나. 지금의 연봉을 두 배 가까이 받고 누군가는 신의 직장이라고 했던 국립대 교직원을 그만둔 이유도 같은 이유였다.
온갖 교수들의 갑질을 참다참다 결국 터져버려 평화적이지 않은 감정적 대응을 해버렸으니, 반 권고사직 정도로 해두겠다. "좀 참지 그랬니." 나무라는 어머니와는 반대로 옆에 계신 아버지는 마치 술 마실 명분이 생긴 것처럼 나를 위한 주안상을 차리고 계셨다. 그 날 아버지와의 술 한잔을 통해 그날의 일들은 기분 좋게 웃어넘겼다.
매번 감정적 울분을 토해내는 습성 때문인지 언론인이라는 새 옷은 비교적 잘 맞는 품새를 엿보였다. 이 세상 직업 중 막내 직원이 본인의 업무에 대해 할 말 다할 수 있는 직업이 어디 있겠는가.
그동안 선배들에게 전수를 받은 교육을 종합하면 적어도 언론인이라면 그럴 수 있는 명분조차 충분하기도 하다.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면 국민은 빛 속에서 살 것이고, 언론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면 국민은 어둠 속에서 살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말처럼 언론이 국민과 함께 어깨동무하고 있으니 두려울 게 없었다.
지난 2년간 이런 사상교육 때문인지 어느새 춘와추선(春蛙秋蟬, 봄의 개구리와 가을의 매미)이란 뜻처럼 쓸모없는 언론인이 되지 않도록 노력할 뿐이다. 기자 생활을 할수록 성격은 모나게 변하고 사회 부적응자처럼 사람들을 바라보지만, 풋내기 청년이 내뱉는 어떤 하소연도 당위성이 충분하게 여겨지는 기자의 이런 직업병을 나는 애정한다. /신가람 정치행정부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