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황우 한밭대학교 교수 |
최근 우수한 한류 문화가 전 세계에 K-콘텐츠로 확산 되면서 한글의 인기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K팝 공연 때 세계 젊은이들이 우리말로 가사를 따라부르며 '떼창(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하거나 한글로 적힌 응원 슬로건을 흔드는 모습을 보면 긍지마저 느끼게 된다. 몇 년 전 방탄소년단의 영국 런던에 있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단독 콘서트 `LOVE YOURSELF : SPEAK YOURSELF(러브 유어셀프 : 스피크 유어셀프)`에서도 공연장을 가득 메운 약 6만 명의 팬들이 대부분 외국인 관객이었음에도 한국어 떼창이 끊기지 않아 놀라움을 자아냈다.
삼성, LG, 현대와 같은 한국 기업이 세계화되고 한국 제품이 세계에서 인기를 끌며, 한국 기업에서 일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한글을 배우고 있다. 또한 외국에 한글로 된 간판들도 늘어나고 있다. 현지인들은 한국산이라는 특징을 내세우는 거 외에도 한글이 가진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서 한글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한글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문자가 되어 가고 있다. 반면 우리의 한글사랑은 어떠한가? 아직도 순우리말은 영어와 한자어에 비해 낮게 취급되고 있다.
'한밭대학교'의 '한밭'에 대하여 예를 들어보면 필자는 '한밭'의 명칭이 순우리말로 된 대학명으로 의미도 좋고 정감 있으며 신선해 보인다. 그러나 혹자는 '밭'이라는 어감이 좋지 않다고 이야기하거나 한자어가 아니라 낯설게 느껴진다고 한다. 특히 다른 지역에 사는 이들은 '한밭'이라는 순우리말 단어가 더욱 생소할 것이다.
'한밭'은 대전의 옛 이름이다. 조선 초기에 한자식 이름을 만들면서 '크다', '으뜸이다','하나', '처음' 라는 뜻의 순우리말 '한'을 대(大)로,'일구다','키우는 곳','자라는 곳'이라는 뜻의 '밭'을 전(田)으로 바꾸어 대전(大田)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후 근대까지 한자어와 순우리말이 함께 공존하였으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대전(大田)'이라는 한자어 지명이 정착되게 되었다. 이처럼 순우리말에서 한자어 지명으로 변경되며 기존의 지명이 갖고 있던 많은 뜻과 의미는 사라지고 '큰 밭'이라는 뜻의 무미건조한 한자어 지명만이 남게 되었다.
다행히도 대전에서는 순우리말 지명인'한밭'을 타 시도에 비해 널리 사용하고 있다. 사용되고 있는 교육시설만으로도 '한밭초등학교', '한밭중학교', '한밭고등학교', '한밭대학교'가 있고 공공 시설로는 연간 1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대전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한밭수목원'과 1989년 개관한 대전에서 제일 큰 도서관인 '한밭도서관', 1992년 개관한 '한밭교육박물관'도 있다. 또한 베이스볼 드림파크 조성을 위해 철거 예정이지만 지난 1959년 대전공설운동장으로 시작해 전국체전 등 대전과 충남의 대표 체육 공간으로 자리매김 했던 '한밭종합운동장'이 있다. 도로로는 동부네거리(옛, 대전 탑 사거리)에서 한밭대학교 앞 덕명네거리까지 대전을 동서로 13.3km 이루는'한밭대로'가 있으며 한밭대로 오정동 농수산 오거리에는 '한밭대교'가 놓여져 있다. 또한 한밭대교에서 대화 IC를 잇는 갑천 도시고속화도로에는 '한밭 IC'가 있다. 대전의 대표적인 로컬푸드 브랜드인 '한밭 가득'에도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대전에서 순우리말 지명인'한밭'은 각종 교육시설, 공공시설, 도로명, 브랜드에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말이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시민들과 시 차원에서 순우리말 지명의 명맥이 끊기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는 대전과 달리 본래의 순우리말 지명을 아예 찾아볼 수 없거나 드물게 된 타 시도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이제라도 내 연고지, 혹은 거주지의 숨은 우리말 지명을 찾아보고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노황우 한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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