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 노송동에는 전라선이 이설되기 한참 전부터 역(驛)을 통해 파생된 성매매 업소가 있었다. 1980년 후반부터는 성(性) 산업이 확장되면서 속칭 ‘미아리식’ 유리방 집결지가 생겨났다.
전주 노송동 ‘선미촌’의 성 산업은 상상 이상이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업소를 대물림하고, 5층 높이 건물 3개 동을 불법으로 수평증축해 미로 형태의 업소를 만들기도 했다. 이뿐일까, 세탁소와 미용실, 화장품 가게, 야식집, 청소 노동자, 심지어 점(占)집까지도 성매매 집결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돈을 벌 만큼 선미촌 성매매 역사는 길고 질겼다. 그러나 선미촌은 지난 7월 마지막 유리방 불이 꺼지며 소멸했다.
지난 8월 말 방문한 전주 선미촌. 이제 성매매 집결지를 뜻하는 '선미촌'보다는 '노송동 예술마을'로 불려야 하지만, 아직 밤의 역사는 곳곳에 '지박령'처럼 남아 있었다. 그나마 몇몇 유리방은 예술인이 입주(리빙랩 사업 일환)해 공간 재활용을 시도하고 있었다.
선미촌에 들어서자마자 유리방 형태의 업소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전주=이해미 기자 |
현장에서 만난 조선희 성평등전주 센터장은 "2011년 노송동에서 도시재생을 시작했는데 선미촌 집결지만 빼고 사업지로 선정했다. 당시 여성인권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이를 문제 삼았고, 주민교육을 시작하면서 여성 인권 측면에서 집결지 폐쇄가 왜 필요한가에 대해서 전주시와 논의하며 거버넌스가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도시재생 첫 시작부터 폐쇄까지는 장장 10년이 소요됐다. 조선희 센터장은 단체장의 의지와 여성인권단체를 중심으로 현장에서 지속 가능한 활동이 담보될 때 집결지 폐쇄는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현재는 모범 도시가 됐지만 시행착오도 많았다. 일례로 2014년 거버넌스를 구축하면서 한옥마을과 연계하는 용역이 발주했는데 결과는 처참했다. 인권과 장소에 대한 의미는 배제됐고 춘화 전시관, 막걸리촌이 제안됐고, 주민 안전을 위해 CCTV를 설치했으나 집결지 여성 종사자들의 얼굴이 촬영되는 위치 등이 문제가 됐다.
이에 민관 거버넌스 동의 없이는 어떤 정책 결정도 할 수 없다는 조항이 생겨났고 비공식 정책팀을 만들어 수차례 논의와 아이디어 교환 끝에 선미촌을 문화와 여성인권 공간으로 구축한다는 최종 계획안을 마련했다.
분홍색 담벼락은 업주가 설치한 가벽이다. 골목길을 불법으로 막아서 업소 주변을 차단했다. 전주=이해미 기자 |
박영봉 전주시 생태도시국장은 "시장의 의지가 가장 강했다. TF팀 부서 또는 시장, 부시장과 행정협의회가 수시로 회의를 통해 신중하게 답을 찾아왔다"며 "올해 상반기에는 경찰과 혼연일체가 돼서 건물주를 설득하고 업주는 강하게 압박했다. 함정단속을 시작하자 11개에서 7개, 4개, 0개로 점차 폐쇄가 이뤄졌다"고 했다.
전주 선미촌에는 과제가 남았다. 불과 2개월 전까지만 해도 성매매가 이뤄졌던 업소 밀집 지역을 자연스럽게 일반 시민들이 유입되도록 문화공간으로 변화를 시작해야 할 타이밍이기 때문이다. 이미 성매매 업소 7곳을 시청에서 매입해 리빙랩, 미술관, 서점 등 거점시설로 구축했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박영봉 생태도시국장은 "집결지 폐쇄로 저녁에도 밝은 곳이 됐지만, 아직 상권은 활성화되지 못했다. 폐쇄가 목적이었다면 전부 밀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목표는 점진적인 변화, 자연스러운 변화"라며 "문화재생 2.0 용역, 내년 초 나올 도시계획 용역을 통해 한옥마을과 동문거리를 연계하는 전주다운 도시 정체성을 확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이해미 기자 ham7239@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통해 작성됐습니다.
업소였으나 현재는 전시공간이 된 곳이다. 벽지와 방 구조 등은 예전 그대로다. 창문을 검은 색지로 막아놨다. 전주=이해미 기자 |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