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날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군고구마 장수나 3개에 천 원씩 파는 잉어빵 장수 포장마차 아줌씨 아저씨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나는 군고구마 장수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회상을 지울 수 없다. 오늘도 군고구마로 떠오른 회상이 지금도 울컥하게 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 유성고등학교 재직할 때 거리에 나가서 보았던 군고구마 장수에 얽힌 이야기이다.
싸락눈이 내리는 토요일 오후 볼 일이 있어 유성 시내를 나갔다. 한참을 걷다 보니 통행이 빈번한 건널목 바로 옆에 군고구마를 파는 포장마차 아저씨가 있었다. 50대 후반쯤 돼 보이는 아저씨인데 빛바랜 누런 점퍼에 매 사냥꾼 모자를 쓰고 있었다. 감기에 걸렸는지 기침으로 콜록거리고 있었으며 소화마비 환자였는지 그 후유증인지 다리를 절름절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얼굴은 궁기가 흐르고 검버섯 무늬가 듬성듬성 수를 놓은 듯한 면상이었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주름살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었다. '3개에 천 원' 하는 군고구마가 맛있고 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는지 5명 정도 되는 남녀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손마다 군고구마 봉지를 든 손님들이 하나 둘 다 빠져나갔다. 마지막으로 제일 뒤에 서 있던 남매만 남아 있었다. 누나처럼 보이는 10살 정도 돼 보이는 소녀와 6살 안팎으로 짐작되는 남자애 꼬마가 퀭한 눈으로 군고구마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누나가 가자고 동생 손을 잡아끌어도 꼬마는 꼼짝 않고 눈과 마음은 군고구마에 가 있었다. 돈이 없었는지 우격다짐에 손을 끌다 메다붙이는 퉁명스런 소리까지 동원하는 거였다. 그걸 보고 있던 군고구마 장수 아저씨가 냉큼 군고구마 2 봉지를 건네주며 '이건 팔다 남은 건데 아가야, 이거 먹어 보아라.' 그냥 주면 미안할까봐 팔다 남은 거라 하는 거 같았다.
삭막한 세상이라 경계해야 할 사람도 많지만 이렇게 가슴 따듯하고 인간미 넘치는 사람은 더 많다. 군고구마 장수 아저씨는 비록 군고구마를 팔아서 먹고 사는 필부필부(匹夫匹婦)이지만, 따뜻한 가슴 없이 명리(名利)의 노예가 돼 사는 일부 삼한갑족(三韓甲族)의 지각없는 냉혈보다는 백배는 낫다.
얼룩지고 빛바랜 포장마차 천 조각에는 '군고구마 3개에 천 원'이라 쓴 글씨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삐뚤빼뚤 수성 사인펜으로 볼품없이 줄도 맞추지 못하고 들쭉날쭉 쓴 글자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 때 마침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년이 군고구마 장수 아저씨에게 다가오더니 "아빠 기침도 하시고 몸도 안 좋으신데 이만 들어가세요, 나머진 제가 팔고 들어갈게요."
아저씨는 씩 웃고 군고구마를 계속 굽고 있었다. 아마 어렵긴 해도 믿음직한 아들이 대견스럽고 장하게 생각되는 표정임에 틀림없었다. 그러기에 추운 날씨에 아픈 몸 이끌고 아버지란 책임감의 포로가 돼 고구마를 굽고 있는 거 같았다.
아저씨 곁에 바싹 다가온 소년을 자세히 보니 우리 반 김○○이었다. 매일 수업만 끝나면 일찍 돌아가더니 아버지 군고구마 파는 일을 도와 드렸던 것 같았다. 순간 학교에서 상담을 하다가 좀 모자란 생각으로 말을 잘 못하여 후회한 일까지 떠올랐다. 후회한 말은 '묻지 말아야 할 아버지 하는 일을 물은 거 '였다. 아버지 하시는 일이 무어냐 물었더니 "예, 우리 아버지 군고구마 장수예요" 하던 생각이 전광판처럼 스쳐갔다. 보통 애들 같으면 아버지가 군고구마 장수라면 창피하고 부끄러운 생각에 다른 직업으로 둘러대거나 거짓말 대답을 하는 것이 일쑤인데 우리 반 김○○ 학생은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한 김○○에게 극구 칭찬을 해 주었다. 내 아버지 어머니가 못생기고 심지어는 한 팔이 없는 곰배팔이나 애꾸눈이라도 "이 분이 바로 제 어머니시고 아버지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해 주었다. 우리 반 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참된 용기를 가진 학생이었다. 진정 효행으로 부모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는 모범생이었다.
그 때 마침 우리 반 김○○가, 학원가는 친구인지 가방을 메고 있는 또래 동료에게, 초라한 모습의 군고구마를 팔고 있는 자신의 아버지를 가리키며 하는 말이 "이 분이 우리 아버지야 인사해."
"안녕하세요. 저는 ○○ 친구 박○○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군고구마 장수나 군고구마를 보게 되면 '군고구마 3개에 천 원!'이란 표지가 바람에 펄럭이던 모습이 보이는 거 같다. 삐뚤빼뚤 쓴 글씨에 아들을 보고 씩 웃는 아저씨 모습에다 우리 반 김○○의 장한 모습이 오버랩되어 가슴을 짠하게 하고 있다.
그건 바로 따뜻한 가슴으로 사람냄새 풍기며 열심히 살려 하는 보통 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이리라.
세상엔 아름다운 일화도 많다. 감동 감명을 주는 책도 많다. 거기에 가슴 뭉클한 영화도 많이 있다. 하지만 난 어떤 감동적인 책보다도 가슴 뭉클한 영화보다도 '군고구마 3개에 천 원!'이라 쓴 삐뚤삐뚤 써 놓은 글씨가 심금을 울린다. 삐뚤삐뚤한 그 글씨 안에는 가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들어 있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고 살겠다는 칠전팔기(七顚八起)의 정신력이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또 고난 속에서도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을 배려하는, 따뜻한 가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며, 자신의 부모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우리 반 김○○의 반포보은(反哺報恩)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군고구마 장수 얘길 하다 보니 이근대님의 '아버지의 술잔엔 눈물이 반이다'가 날 그냥 못 가게 한다.
아버지의 술잔엔 눈물이 반이다
엿가락처럼 늘어져 집에 들어온다.
별을 품고 나갔다가
어둠을 짊어지고 녹초가 된 아버지
베란다로 나가 혼자서 담배를 피운다.
한 개비의 담배를 깨물다가
새가 떠난 창밖의 나뭇가지처럼 아버지의 눈빛이 떨린다.
누가 아버지의 꿈을 훔쳐 갔을까
- 하략 -
'군고구마 3개에 천 원!'
거기엔 부처님의 자비도 예수님의 사랑도 함께 똬릴 틀고 있었다.
남상선 / 수필가, 전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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