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세대보다 최초로 가난한 세대이면서 명품에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세대,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익숙하면서도 모든 일의 실행에 앞서 보고서를 만들어 발표에 익숙한 세대, 지극히 개인주의적이면서 가치 소비를 지향하는 세대, 그리고 스스로가 MZ세대인줄 모르는 세대다.
사실, 1980년부터 2004년생까지를 일컫는 밀레니얼 세대와 1995년부터 2004년 출생자를 뜻하는 Z세대를 합쳐 일컫는 MZ세대는 그 세대 안에서도 20여년의 차이가 나기 때문에 하나의 범주로 묶어 부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통계청의 2019년 기준 약 1700만 명이 MZ세대로 분류 됐을 정도다. 1/3을 하나의 하나의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끊임없이 세대를 구분하고 집단을 정의하고 우리와 그들을 나눈다.
똑같은 얼굴에도 불구하고 유럽사회는 국적을 놓고 갈등이 일어나고 한때 단일 민족 국가를 자랑으로 내세웠던 우리나라는 젠더간, 계층간 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이전에는 인종을 둘러싼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고, 종교로 인한 갈등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문제는 그때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기준이 지금은 흔적조차도 남지 않았고, 당시 아무것도 아니던 존재는 오늘날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우리가 결국 무엇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정의도 바꾸고, 가치도 바뀌는 셈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나고, 대통령이 탄핵되고 이상 기온이 계속되던 시기를 지금 우리가 '일상'이라며 그리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치열했던 현재의 시간을 살았던 과거를 통해 지금 현재의 이 시간에 질문을 던지는 책이 나란히 출간됐다.
하나의 문화아이콘으로 꼽히는 버지니아 울프의 '3기니'(버지니아울프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364쪽)가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여성의 정치참여와 전쟁, 파시즘에 대해 다루고 있다면, 2010년을 기점으로 해마다 기록한 열편의 글을 묻은 '물음을 위한 물음'(윤여일 지음, 갈무리 펴냄, 320쪽)은 팬더믹으로 잠시 멈춤을 하고 있는 이시기, 우리가 가야할 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유럽 중심의 세계사에서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변방으로 눈을 돌린 '야만과 문명의 경계에서 바라본 세계사'(에발트 프리 지음·소피아 마르티네크 그림·손희주 옮김, 동아엠앤비 펴냄, 508쪽)는 유럽, 백인 중심의 세계사를 통해 주류의 가치관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가난한 교육받은 남성의 딸을 위해 기부한 '3기니'='자기만의 방'과 함께 1970년대 이후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재평가되고 있는 '3기니'는 1938년 발표된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다. 전쟁을 막기 위해 도움을 청하는 남성 법조인에게 여성 작가가 보내는 한통의 긴 편지다. 편지의 저자는 '고학력 남성의 딸들과 누이들'의 희생과 원조로 지탱된 남성 엘리트 교육의 실패를 통렬히 지적하고 남성 중심의 국가 주의가 벌이는 전쟁에 반대한다.
'3기니'는 편지와 주석의 교차 편집이라는 매우 독특한 형식으로 구성됐는 데 울프는 이 수많은 주석을 위해 당시 남녀의 격차와 국내외 정세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모았다.
작가는 책을 통해 지난한 투쟁으로 교육과 경제활동, 정치 등에서 여성의 참여가 이뤄졌으나 여전히 성과 계급이 가부장제에 의해 억압을 받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 같은 가부장 체제와 당시 파시즘 체제의 유사성, 남성들의 기만을 지적하고 있다.
이를 위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경제 활동 외에는 어떤 잉여 가치도 생산하지 않음으로써 전쟁에 직간접적인 협력을 거부하겠다는 다짐, 현재의 위계 질서를 지탱시키는 어떤 상징이나 지위, 심성도 갖지 않겠다는 각오, 현 체제를 유지시키는데 기여하는 어떤 단체에도 가입하지 않겠다는 결심과 함께 아웃사이더로 남겠다고 선언한다.
3기니는 작가가 여자 대학 재건 기금, 여성의 전문직 진출을 돕는 단체, 문화적 지적 자유를 수호하며 전쟁방지를 도모하는 단체에 각각 1기니씩 기부하는 금액이다.
누군가에게는 매우 적은 돈일지라도 가난한 '교육받은 남성의 딸'에게는 매우 가치있고 소중한 돈이자, 페미니즘이라는 영역을 처음 연 작가의 씨앗이기도 하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일상은 무엇일까='물음을 위한 물음'은 2010년을 기점으로 해마다 기록한 열편의 글이다. 저자는 2010년대에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을 사회과학적 분석을 앞세우기 보다는 당시의 시점과 상황속에서 동요하면서 사고를 이어가는 방식으로 십 년간 열 편의 에세이를 작성했다.
책은 이명박 통치기를 시작으로 후쿠시마 사태, 세월호 참사, 촛불광장, 대통령 탄핵을 거쳐 코로나 팬더믹 사태까지 다룬다.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와 달리 윤곽이 그려지지 않는 2010년 대라고 말하고 있는 저자는 사고가 퇴행하고 언어가 퇴화한 모호한 시대라고 2010년대를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 19로 시행되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우리가 염원하는 '일상 회복'의 '일상'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지구 온난화로 최악의 기상 이변이 발생하고 찰나에 발생한 세계적 전염이 아니라면 인류가 운명 공동체란 사실을 깨닫고 각성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묻는다.
최악의 시대를 걷고 있는 2020년은 이미 2010년에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음을, 우리가 그리워하는 일상이 그 일촉즉발의 2010년대의 모습인지, 우리는 그 부표에서 얼마나 멀어 졌는지에 질문을 던진다.
▲아시아인인 우리는 왜 유럽 중심의 세계사를 주류로 알고 있을까?='야만과 문명의 경계에서 바라본 세계사'는 그동안 유럽인의 시각에서 쓰여진 세계사에서 벗어나 아메리카 대륙, 아시아, 아프리카의 역사를 조명한다.
유럽인의 눈으로 야만인으로 구분된 변방의 역사를 주류로 놓고 보면 오히려 유럽의 정복자는 야만인이 된다. 서유럽이 종교 전쟁을 치르느라 혼란을 겪었던 수천년전 메가시티는 존재했고 실크로드와 거대한 바다 무역길, 거대한 무역길도 존재했음을 책은 인류 문명과 도시의 생활사를 40장에 이르는 컬러 도판 28편의 지도를 통해 본여준다.
책은 다른 공간, 다른 시간을 통해 최초의 인간이 발견된 아프리카 문명과 성장, 서기 1세기 인도양의 교역망과 중국의 실크로드, 7세기 이미 인구 100만명의 도시로 성장한 장안에 대해서 말한다. 여기에 유럽인의 정복하기 전의 아메리카 문명과 21세기 메가시티 등에 대해서도 다루며 주류의 가치관과 시각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오희룡 기자 huily@
*'올랑올랑'은 가슴이 설레서 두근거린다는 뜻의 순 우리말입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