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희망을 가질 수 없을 만큼 삶이 힘들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취업이나 내집 마련 등 힘든 현실에 대한 자조적인 말이기도 하다.'망했으니 포기해야지'가 아니라, '이런 삶을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구나'가 담겨 있달까.
이생망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20대를 거치며 한 번쯤은 인생을 리셋하고 싶다거나, 동화속 주인공처럼 마법사가 나타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고민덩어리들을 일순간에 해결해 주기를 꿈꿨던 적이 있었다. 크리스 마스 이브에 소원을 빌고 일어나면 기적처럼 머리맡에 어제 말하고 잔 선물이 놓여있었던 기적이 언젠가 한번은 다시 오지 않을까 하면서.
반대로 내가 당한 일들을 되돌려 줄수 있지 않을까 고민으로 밤을 지샌적도 있다.'그때 그말만 했더라면', '그때 내가 이렇게만 했더라면', '그때 내가...' ..수 많은 '그때'를 외치며, 이제는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갈던 긴긴 밤도 있었다.
크리스마스에 일어난 기적이야기를 담은 '겨울(앨리스미스 지음·이예원 옮김, 민음사 펴냄, 484쪽)'과 복수의 힘을 그린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요나스 요나손 지음·임호경 옮김, 열린책들 펴냄, 524쪽)'는 이처럼 고단한 삶에 찌든 어른들을 위한 동화같은 소설이다.
두 작품 모두 '예술'을 소통의 도구로 사용한 점도 흥미롭다. '겨울'에서의 예술이 전작 '가을'에 이어 사랑을 이어주는 기적같은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면,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에서는 표현주의 미술의 숨겨진 거장으로 꼽히는 이르마 스턴을 조명하고 있다. 현재 유럽을 중심으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인종 차별과 혐오주의가 소설의 큰 축을 이루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크리스마스에 찾아온 유령? 천사? '겨울'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 마스 캐럴'은 크리스 마스에 유령이 찾아와 구두쇠 같은 주인공의 삶을 변화시킨다. 앨리 스미스는 그 크리스마스를 현재 영국의 눈덮인 시골 풍경속에 펼쳐 놓았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중년의 여주인공과 늘 데면데면한 아들, 그리고 여주인공과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언니, 아들의 가짜 약혼자 역할을 하는 럭스까지 네명이 크리스 마스에 펼치는 이야기는 '크리스마스 정신을 통해 거듭난다'는 크리스마스 캐럴의 변주곡이다.
다양한 인종과 민족으로 인종 차별과 브렉시트 여파로 이민자에 대한 증오와 혐오가 공공연히 드러나고 있는 영국의 현 상황을 날실과 씨실처럼 부드럽게 직조해 내고 있다.
팬데믹 시대 예술가만이 할수 있는 가장 예술적 치유법으로 평가 받는 '겨울'은 브렉시트 이후 영국사회가 마주한 '그래서 타인은 우리에게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여기에 앞만 보고 달린 여주인공이 겪었던 단한번의 사랑, 아들의 새로운 각성을 가져온 세익스피어의 '심벌린' 등 소설속 예술은 인간의 의식을 확장하고 마음을 연결하는 기적같은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네 맞아요." 뢰슬러는 솔직히 시인했다. "사실 교사와 학생이 피치 못하게 얽혀 살아야 하는 3년 동안 귓방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가끔 생긴답니다.
"그래서 그가 선생님께 복수했나요?"
"네"
"그리고 선생님은 다시 그걸 돌려주고 싶고요?"
"먼저 시작한 것은 그 놈이예요!"-'달콤한 복수 주식 회사' 중
▲복수를 계획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달콤한 복수 주식회는 말그대로 유럽 최고의 광고맨에서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CEO가 된 후고의 복수 대행업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이웃과 갈등을 빚고 있는 친구에게 복수 계획을 짜주다가 이 작품을 착상했다.
작가는 복수가 지닌 창의적인 잠재력에 주목하면서 복수계획을 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이인 치유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작품안에서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이 동원되는 복수담을 풀어놓는다.
실제로 우리는 한번쯤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이웃에게, 밤마다 담배를 펴대는 아랫층 어딘가의 이웃에게, 학창시절 체벌을 가했던 교사에게, 아무렇게나 주차하고 가버리는 무례한 누군가로 인해 응당 복수심을 품고 산다. 그 만큼 복수는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복수 계획을 꿈꾸는 것만으로도, 그 계획이 참신하고 기상천외할 수록 마음의 상처는 치유된다.
그동안 현대 예술에 관한 애정을 드러낸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표현주의 거장으로 꼽히는 이르마 스턴의 생애를 작품의 한 축으로 구성했다. 인종주의와 혐오주의에 빠진 미술품 거래인을 한 축에 놓음으로써 현재 유럽이 직면하고 있는 인종차별과 혐오주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오희룡 기자 hu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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