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술에 고무되고 불콰해진 문인이 그 소설가님을 칭찬했다. "H 소설가님께서는 명문대를 졸업하시고 이런저런 사회적 업적까지 뚜렷하신 분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네 명의 자녀 역시 명문대를 보내 의사 등으로 키우신 공로까지 정말 대단하신 분이십니다."
나 역시 존경의 의미로 정중하게 막걸리를 따라드렸다. 순서에 따라 내 차례가 되어 건배사를 하게 되었다. 나는 '지화자'를 외쳤다. ['지'금이 '화'양연화의 가장 좋은 때입니다 '자'~ 즐겁게 마시고 인생을 즐깁시다] 라는 의미였다.
2000년에 개봉되어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외화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시절을 이르는 말이다. 사람에겐 누구나 화양연화의 절정기와 황금기가 있다. '있었다'는 과거이고, '있을 것이다'는 미래다. 그런데 전자와 후자는 별 의미가 없다.
현재를 나타내는 '있다'가 역시 최고다. 그렇다면 현재의 나는 과연 어떤 위치에 있는가. 작년 가을에 실직한 뒤 얼추 일곱 달을 무위도식했다. 그러다가 올 5월부터 희망일자리 사업에 나가 일하고 있다. 하루 4시간 알바 개념이다.
지난 8월까지는 전통시장에서 출입자를 대상으로 한 방역 사업 일을 했다. 9월 초부터는 또 다른 희망일자리 사업에서 일한다. 겨울철을 대비하여 모래에 영화칼슘을 섞어 비닐봉지에 담곤 끈으로 친친 묶는다.
단순노동인지라 별 힘은 들지 않는다. 문제는 길거리에서 잡초를 제거하는 작업이다. 땀은 비 오듯 흐르고 언제 물었는지 모기가 할퀸 팔목은 가려워 죽을 지경이다. 그러나 잡초의 끈질긴 생명력에 한번 놀라고, 그 잡초들 아래서 기생하는 수많은 곤충과 벌레들의 아지트라는 사실에 두 번 경악했다.
그래서 혹자는 잡초의 생명력을 배우라고 했던 것이리라. 나의 건배사가 끝나자 술잔을 비운 H 소설가님께서는 내 자랑을 또 하셨다. "홍 기자님은 4권의 저서를 낸 작가님일 뿐만 아니라 20년 시민기자 경력까지 갖춘 명불허전의 멋쟁이입니다. 자식 농사에도 성공하여 정말 부럽습니다."
면구스러워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오늘은 모 기관에서 시니어 신입기자를 대상으로 교육 및 '글 잘 쓰기 노하우' 강의를 했다. 당초 1시간 예정이었으나 10분을 더 넘기는 열강을 했다. 강의를 마치자 폭풍 박수가 쏟아졌다.
순간 '맞아, 이 맛에 강사 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통장 입출금 안내 문자가 왔다. 아들과 딸이 한가위 잘 보내시라고 용돈을 두둑하게 보낸 것이다. 참 감사한 아이들이다.
H 소설가님의 칭찬처럼 나도 자식농사에 있어서만큼은 성공했다는 평을 듣는 사람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내가 좋아하는 사자성어에 송무백열(松茂柏悅)이 있다.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뜻으로, 벗이 잘되는 것을 기뻐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자신의 자녀가 잘되길 바라는 건 모든 사람의 본능이자 이심전심이다. 이를 '자녀 성공에 부모는 기뻐한다'는 의미로 바꾸자면 자무성열(子茂成悅)이 되겠다. 아이들에게 "용돈 잘 받았다! 고마워. 한가위 잘 보내거라~"라는 답신의 문자를 보냈다.
코로나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을 맘대로 볼 수 없는 올 한가위지만 나의 글을 사랑하시는 독자님들께서 모두 건강하시길 축원한다.
홍경석 / 작가·'초경서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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