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관객 없는 무대에서도 열연한다. 작가는 애호가가 없어도 아랑곳 하지 않고 부단히 자기세계를 추구한다. 혼신의 열정을 쏟아 작품을 만들어 낸다. 물론,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이상세계, 아름다움은 무한한 꿈과 상상력, 영감과 쾌감을 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와 효용성을 갖는다. 그러나 그가 선이라면 이상세계는 현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입증되어서도 안 된다. 불가사의여야 한다. 미완성으로 남아야 한다. 반면에 누군가 봐주지 않으면 작품이 아니다. 그렇다면 예술가가 추구하는 이상세계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일까? 조화에 있음을 알면서도 늘 의문이다.
소싯적 구입한 물건이 고장 나면 스스로 고쳐서 사용하려 했다. 구입처가 멀기도 하였지만, 사후관리라는 것이 거의 없었다. 개념조차 없었던 듯하다. 따라서 생산업자와 별개의 수리점이 번성하였다. 그리 비싸지 않아도 고쳐 썼기 때문에 번창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물건에 하자가 있어도 사용자 부주의나 사용 환경 탓으로 돌린다. 그러다가 사후관리 기간이 명시되더니 점차 그 기한이 길어졌다.
그러던 기업이 이제 고객 만족을 추구한다. 고객만족이 생산성 향상이나 원가절감보다 중요하다는 경영이론이다. 고객만족은 고객을 기대이상으로 충족시키는 것이다. 감동을 주는 것이다. 그를 통해 재 구매율을 높이고 선호도를 지속시킨다. 당연히 품질이 좋아야 하고 불만을 효과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품질향상은 어디에서 올까? 상품의 기획, 설계, 디자인, 제작, 사후관리 등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사람에 의존한다. 생산은 적지 않게 설비가 담당하지만, 설비 역시 사람이 하는 것이다. 인간관계에 내재된 기업문화가 품질을 좌우한다. 쉽게 말하면, 인간이 하는 일에는 오류가 있기 마련이다. 때문에 생명을 다루는 것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오류를 줄이는 첫 번째가 복지향상을 비롯한 근로환경, 작업장환경 개선이다. 고객만족에 앞서 사원만족을 추구하는 시대다. 만족스런 제품의 원천이다. 거기에 좋은 기술과 자재, 품질관리가 더해지면 질적 향상이 수월해진다.
제품의 품질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소통과 안전, 사후관리다. 사용자가 가장 먼저 알고,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사용 불편은 품질향상의 시작이다. 경청해야 한다. 불만해결의 첫 번째는 오류를 인정하는 것이다. 잘못의 인정에서 개선이 출발한다. 인정에서 신뢰가 쌓인다. 사용자 잘못이라거나, 사용 환경의 오류라는 주장은 불쾌감과 불신만 키운다.
최근 산업정책연구원(IPS)에서 '2021 대한민국 CEO 명예의전당(5th Korea CEO Hall of Fame)'을 통해 21개 부문 25명의 수상자를 선정 발표하였다. 죽 살펴보니, 선정된 기업을 관통하는 주요 내용 중 하나가 고객만족과 서비스 혁신이었다.
기업은 생산이나 유통을 통해 사용자와 만난다. 사용자 없이 기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과 사용자의 관계를 5단계로 본다. 예상고객(Prospect), 고객(Customer), 단골(Client), 옹호자(Advocate), 동반자(Partner)가 그것이다. 이제 고객 만족에서 옹호자를 거쳐 동반자로 생각하는 시대이다. 이제 기업 성과가 시장 점유율이 아닌 고객 점유율로 평가된다.
서비스는 유형재화가 아니면서 그 이상의 부가가치를 갖는다. 기업인은 살아남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모든 것을 건다. 예술가는 이상세계를 제시하고 영감을 주기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사람은 밥만으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저마다 분명한 목표가 있고 실현의지로 뭉쳐있다.
정치는 무엇일까? 무엇을 추구할까? 대선 선거정국 행태를 보면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분명한 목표나 의지도 없으며, 절실함도 없어 보인다. 게다가 시민 없는 정치인이 어디 있는가? 그들만의 잔치가 되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 하지 않았나? 능력이 없으면 끊임없이 소통하여 신뢰라도 쌓아야 하지 않는가? 내로남불과 반대로 역지사지(易地思之) 해보라. 한번쯤 상대방 입장에서, 시민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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